[딜사이트 박성민 기자] "은퇴하면 경기도 양평에 작은 식당 하나 차리는 게 꿈이었는데, 이렇게 커져 버렸어요. 그동안 같이 고생한 우리 직원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해요."
와병에 들기 전 아워홈 경영회의에서 구자학 회장이 남긴 말이다. 12일 향년 92세로 영면에 들어간 구 회장은 기업과 나라가 잘 되려면 기술력만이 답이라고 여겼다. 오직 창의력과 기술을 기본으로, 지금 우리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고집했다.
기술을 강조해왔던 그가 걸어온 길에는 '최초' 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 붙었다.
1981년 럭키에서 대표이사로 몸담았던 시절 잇몸질환을 예방하는 페리오 치약을 개발한 것이 대표적이다. 아울러 1983년 국내 최초로 플라스틱 PBT를 만들어 한국 화학산업의 일대 전기를 마련했고, 금성일렉트론(現 SK하이닉스)에서는 세계 최초 램버스D램을 개발했다. 이외 LG엔지니어링에서는 굴지의 일본 기업들을 제치고 국내 업계 최초로 일본 플랜트 사업을 수주하기도 했다. 현재 LG의 근간이 된 주요 사업의 시작과 중심에 늘 구 회장이 있었던 셈이다.
구 회장은 2000년 아워홈 창립 당시 식품기업에도 기술투자가 중요하다 판단, 업계 최초로 식품연구원을 설립했다. 당시 임원들은 "단체급식 회사가 대량 생산만 하면 되는데 굳이 연구원까지는 불필요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으나, 구 회장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첨단산업분야 못지 않은 R&D인프라가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구 회장의 이러한 결단은 음식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먹는 만큼이나 만드는 과정을 좋아했다고 한다. 미국 유학 중 현지 한인마트에 직접 김치를 담가주고 용돈벌이를 한 건 유명한 일화다.
이러한 관심 덕분이었을까. 아워홈 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직접 현장을 찾는 것은 물론, 당시 70세의 나이에도 생산·물류센터 부지를 찾아 전국에 발품을 팔기도 했다. 구 회장의 노력 덕에 아워홈은 2010년 중국 단체급식사업을 시작으로, 2014년에는 청도에 식품공장을 설립하는 등 사세를 크게 키울 수 있었다.
실제 구 회장이 아워홈을 처음 창립할 당시만 해도 이 회사의 매출액은 개별기준 2125억원에 불과했으나 20년여가 지난 작년 1조6011억원으로 8배 가량 커졌고, 영업이익도 같은 기간 114억원에서 318억원으로 3배 가까이 늘었다.
재계는 '국민 생활과 가장 밀접한 먹거리로 사업을 영위하는 식품기업은 막대한 사회적 영향력과 책임감을 동시에 짊어져야 한다'는 구 회장의 경영철학 덕에 아워홈이 종합식품기업으로 거듭났다고 평가 중이다.
와병에 들기 전 "요새 길에서 사람들 보면 정말 커요. 얼핏 보면 서양사람 같아요. 좋은 음식 잘 먹고 건강해서 그래요. 불과 30년 사이에 많이 변했습니다. 나름 아워홈이 공헌했다고 생각하고 뿌듯합니다"라고 밝혔던 구 회장의 소감이 귓가에 맴도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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