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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 좋고 값싼 제품 만들겠다' 파스 외길 걸어온 신념
민승기 기자
2022.07.07 16:26:50
①배고픔보다 근육통에 고통받는 국민 위해 연구개발 노력
이 기사는 2022년 07월 07일 13시 31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故 이영수 신신제약 명예회장. /사진=신신제약

[딜사이트 민승기 기자] 한국 제약 산업의 역사와 함께한 신신제약 이영수 명예회장이 향년 96세의 일기로 6일 별세했다.


이영수 명예회장은 1959년 신신제약을 설립한 창업주로 대한민국 최초의 파스인 신신파스를 탄생시킨 장본인이다.


1927년 8월 19일 충청북도 음성에서 태어난 이 명예회장은 충남 천안과 목천에서 자랐다. 서울 흥국초등학교, 경성상업학교를 거쳐 중국 랴오닝성 다례에서 지금의 경영대학에 해당하는 다롄고등상업학교를 졸업했다.


졸업 후 제약 및 화학 업체를 다니던 중 배고픔보다 근육통에 고통받는 국민들을 안타까워하며 국산 파스를 만들기 위해 신신제약을 설립했다. '국민 통증 케어'라는 창업 정신은 현재까지 신신제약의 뿌리이자 핵심 철학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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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이 명예회장은 육체노동으로 인한 통증에 시달리던 국민을 위로하고 고가의 밀수품이었던 일본 파스로부터 파스 독립을 이뤄내겠다는 신념 하나로 연구 개발에 몰두했고, 1967년 '에어 신신파스'를 출시했다.


그러나 발매 초기에 상당한 시련을 겪었다. 사람들은 비싸도 밀수품인 일본 파스에 익숙해져 있었고 당시 부족한 기술 탓에 품질 문제로 반품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 명예회장은 기술적으로 앞서있던 일본의 유명회사를 찾아가 기술 제휴를 요청했지만, 번번히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찾아가 '나 이영수가 아닌 대한민국을 도와달라'는 읍소를 했고, 결국 1969년 기술 도입 계약을 체결하게 됐다.


이후 신신파스의 입지가 확대되면서 주문이 밀려들었지만 파스와 반창고의 주원료인 면사의 구득 난으로 제품을 생산하지 못하는 위기를 맞았다. 당시 면사는 우리나라의 주요 수출품 중 하나였는데, 중국 정부가 대량 매점에 나서면서 면사가 부족했던 것.


신신제약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사무실의 임원들은 물론 공장의 생산직 직원들까지 입고 있던 단벌 와이셔츠를 벗어 제품을 만들기도 했다. 이 면사 구득 난은 이 명예회장과 임직원들이 발로 뛰어다니며 당시 최대 직물업체인 경성방직과 연을 맺고 방직협회로부터 최우선 실수요자로 선정되면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 명예회장은 2020년 신신제약 대표직을 내려 놓을 때까지 기술 개발과 활발한 경영을 이어갔고, 회사를 명실공히 '파스의 명가'로 만들었다.


한편 이 명예회장은 의약품 수출이 활발하지 않았던 1960년대부터 수출에 집중해 왔다. 덕분에 1983년에는 국내 제약사 최초 완제의약품 '100만불 수출의 탑'을 달성하기도 했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1997년 국민훈장 동백장, 2009년 한국창업대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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