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백승룡 기자] 이달 들어 잠시나마 안정세를 보이던 채권 시장이 다시 요동치고 있다. 지난 주말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잭슨홀 미팅 연설에서 강도 높은 기준금리 인상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면서다. 회사채 발행을 위한 수요예측을 앞두고 있던 롯데쇼핑(AA-/안정적)과 대한항공(BBB+/안정적)도 바뀐 시장 기류 속에서 부담이 높아진 모양새다.

29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롯데쇼핑과 대한항공은 30일 각각 1500억원 규모의 공모채 발행을 위한 수요예측에 나선다. 트렌치(trenche)를 살펴보면 롯데쇼핑은 ▲2년물 500억원 ▲3년물 700억원 ▲5년물 300억원으로, 대한항공은 ▲2년물 700억원 ▲3년물 800억원으로 구성했다. 희망금리밴드는 롯데쇼핑이 개별민평금리 대비 각각 ±30bp(1bp=0.01%포인트)를, 대한항공이 ±20bp를 가산해 제시했다.

이달 채권시장은 미국의 7월 소비자 물가지수(CPI)가 예상치를 밑돌면서 인플레이션 피크아웃(정점통과) 기대감으로 모처럼 안정세를 나타냈다. 회사채 수요예측에 나선 SK텔레콤(AAA/안정적)과 롯데케미칼(AA+/안정적)은 조 단위 매수주문을 받았고, 신용등급 BBB급인 두산퓨얼셀도 이달 초 수요예측에 흥행하며 증액 발행에 성공한 바 있다.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3.1% 안팎을 맴돌았다.

그러나 지난주부터 시장 분위기는 급변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지난 25일 사상 처음으로 네 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인상한 데 이어, 연준의 연례 심포지엄 '잭슨홀 미팅'에서 파월 의장은 시장의 예상보다 강력한 매파(통화긴축 선호) 발언을 쏟아내면서다.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29일 하루 만에 12.8bp 상승세를 기록, 3.653%를 나타냈다. 신용등급 AA- 무보증 회사채 3년물 금리도 12.2bp 오른 4.621%로 집계됐다.

회사채 투자수요도 다시 얼어붙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김은기 삼성증권 수석연구위원은 "8월 금통위와 미국 잭슨홀 미팅 이후 시장 분위기는 완전히 바뀌었다고 봐야 한다"며 "국고채 금리부터 급등하고 있어 크레딧물 수요도 많이 위축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한항공은 BBB+라는 비교적 낮은 신용등급에도 불구, 엔데믹에 따른 수요 회복과 신용등급 상향 기대감 등에 힘입어 올해 두 차례에 걸친 수요예측을 모두 흥행으로 마쳤다. 1월과 4월 2000억원씩 모집한 대한항공은 각각 3530억원, 5180억원의 매수주문을 받은 바 있다. 다만 환율과 국제유가가 고공행진을 이어가면서 신용등급 회복이 지연되고 있고, 채권시장이 위축되면서 이번 투자수요는 앞선 두 차례에 비해 약화될 것이라는 데 무게가 실린다.

롯데쇼핑은 부정적인 영향을 더 크게 받을 것으로 보인다. IB업계 관계자는 "롯데쇼핑은 올해 신용등급이 AA에서 AA-로 하향조정돼 당분간은 신용등급 변동 가능성이 없지만,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두 실적이 저하되면서 투자 매력도도 낮아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여전히 신용등급이 높아 미매각은 면하더라도 금리가 밴드 상단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고 전망했다. 롯데쇼핑이 공모조달에 나선 것은 지난 2021년 4월 이후 약 1년 반 만이다.

한편 대한항공과 롯데쇼핑 모두 이번 조달자금을 채무상환 자금으로 사용할 예정이다. 수요예측 결과에 따라 대한항공은 2000억원, 롯데쇼핑은 3000억원까지 증액한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