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백승룡 기자] 올해 금리인상 여파로 회사채 투자수요가 위축되면서 기업의 회사채 상환 기조가 지속되고 있다. 회사채 금리가 치솟으면서 이자비용이 늘어나자 현금성자산을 활용해 상환에 나서거나 은행 대출로 일단 올해를 넘기자는 분위기가 이어지는 모습이다.

14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한화는 오는 17일 만기가 돌아오는 9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현금으로 상환할 예정이다. 금리가 높아 조달비용이 오르자 차환 대신 상환을 택한 것이다. 현대제철도 오는 19일 만기가 돌아오는 2200억원 규모 회사채를 현금으로 상환할 예정이다.

그간 높은 신용등급을 앞세워 회사채 시장에서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하던 대기업들은 회사채 금리가 치솟자 상환 기조로 돌아서는 모습이다. SK하이닉스는 지난달 26일 만기가 돌아온 1400억원 규모 회사채를 현금으로 상환했다. 에쓰오일(S-OIL, 500억원), 여천NCC(1000억원), 만도(900억원)도 지난달 만기가 도래한 회사채를 모두 보유 현금으로 상환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채권담보부증권(P-CBO)을 포함한 올해 1~8월 공모 회사채는 1조5000억원 규모 순상환된 것으로 집계된다. 지난달 3000억원 규모 순발행을 나타냈지만 이는 신용보증기금의 지원을 받는 'P-CBO' 발행이 6000억원 늘어난 영향으로, 이를 제외한 일반 회사채는 순상환 흐름을 이어갔다. 회사채 순상환 기조는 지난 5월부터 4개월 연속 지속되고 있다.

그간 대기업의 주요 자금조달 통로였던 회사채 시장이 순상환으로 돌아선 것은 올해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이자부담이 늘어난 탓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신용등급 AA- 회사채 3년물 금리는 이달 초 4.7%를 돌파한 뒤 4.5%를 웃돌고 있다. 지난해 9월 초 1%대 후반에서 서서히 오르기 시작하던 것을 고려하면 1년 사이 이자비용이 두 배를 훌쩍 뛰어넘게 된 수준이다. 올해 초(2.46%)와 비교해도 금리는 2%포인트 이상 높아졌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올해 회사채 시장의 위축은 금리인상에 따른 투자수요 감소에서 비롯돼 이에 따른 기업의 발행 감소로 이어졌다"면서 "높은 신용등급을 앞세워 낮은 금리로 장기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는 게 회사채 시장의 강점이었는데, 이자비용이 1년 전 보다 두 배 이상 높아지면서 기업들도 굳이 회사채를 통한 조달의 필요성이 낮아진 것"이라고 말했다.

회사채 시장을 떠나 은행 대출로 갈아타는 대기업들도 크게 늘어났다. 지난달 말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대기업 대출 잔액은 96조7491억원으로 전체 기업대출 잔액의 14%에 달했다. 은행신탁을 포함한 전체 예금은행으로 범위를 확대하면 지난달 말 기준 대기업 대출 잔액은 202조6000억원으로 200조원을 돌파했다. 지난해 말(179조3000억원) 대비 8개월 만에 20조원 넘게 늘어난 규모다.

김은기 삼성증권 수석연구위원은 "기업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일단 현금성자산을 줄이겠다는 것"이라며 "올해까지는 보유 현금이나 은행 대출로 버텨보고 내년 연초 자금유입을 기대하려는 추세가 강하다"고 말했다. 이어 "통화정책의 불확실성이 지속돼 어느 정도 선이 금리 고점일지 예상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금리가 안정화되는 수준이 가늠될때까지는 기관투자가들이나 기업들이나 관망세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