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환 위한 ESG채권 발행, 적정한가
신규 부가가치 한계…"ESG 태동 시기, 완화적 규정 필요해"
이 기사는 2021년 04월 27일 17시 04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딜사이트 배지원 기자] 국내 채권시장에서 ESG(환경·사회·지배구조)채권이 본격적인 성장기에 진입한 가운데 ESG채권의 조달 목적 기준이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환경·사회적 가치를 창출이 아닌 단순 차환을 목적으로 한 ESG 채권의 발행이 이어지며 기대했던 ESG 투자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를 놓고 의견이 엇갈리는 모습이다. 


올해 들어 ESG채권 발행에 나서는 금융사와 일반기업들은 종종 이미 조달했던 자금의 차환을 위해 ESG채권 시장을 찾고 있다. 


증권업계 최초로 녹색채권 발행에 나선 삼성증권은 나이스신용평가로부터 최고 등급 'Green1'을 부여 받았다. 녹색채권은 친환경 사업을 위한 자금 조달을 목적으로 발행된다. 해당 채권은 북미 천연가스 미드스트림(석유나 가스의 운송·정제·액화 과정)과 프랑스 태양광 발전 사업과 관련해 기존 차입금 차환 용도로 사용됐다. 기투자된 용처이지만 삼성증권은 가장 높은 ESG등급을 획득하는 데 성공했다.


미래에셋증권도 지난 3월 1000억원의 ESG채권을 발행하며 조달금액 전액을 한국주택금융공사가 발행한 주택저당증권(MBS)에 대한 투자자금 차환(조달금액의 50%)과 신규 투자(50%)에 투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프로젝트 적격성은 MBS 발행구조상 기초 채권인 주금공 MBS의 프로젝트 적격성과 연계돼 있다. 주택금융공사의 MBS도 대표적인 ESG채권으로 인정받고 있다.


최근 한화도 지난달 마무리된 한화솔루션의 유상증자 대금 차환을 위해 회사채 발행을 예고하고 있다. 채권 발행에 앞서 한국기업평가와 나이스신용평가로부터 ESG등급을 의뢰한 한화는 가장 높은 등급을 받았다. 한국기업평가는 "녹색채권 발행대금의 직접 투자처인 유상증자 대금 측면에서는 차환 성격이지만, 유상증자 대금을 활용한 한화솔루션의 투자는 신규 투자 성격"이라고 평가했다. 한화솔루션은 조달한 자금을 태양광 발전 사업과 그린수소 사업에 투자할 계획이다.


이외에도 캐피탈사나 카드사들이 친환경차, 전기차를 위한 할부 상품과 이를 차환하기 위한 목적으로 ESG채권을 빈번하게 발행하고 있다.


ESG채권 발행을 통한 기존 프로젝트 관련 차환은 분명 가능한 부분이다. 지난해 말 환경부가 제시한 '녹색채권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ESG채권 발행 목적 중 이전에 조달한 자금을 상환하기 위해 다시 채권을 발행하는 '차환(Refinance)'이 포함돼 있다. 다만 ESG채권 투자에서 지니는 의미가 다르다는 점을 감안해 투자자에게 조달자금 중 신규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예상 비율을 밝힐 것을 권고하고 있다. 


그럼에도 일각에서는 차환 목적의 채권 발행의 경우 투자자가 기대하는 부가적인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기 어려운 만큼 진정한 ESG채권 조달 목적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복수의 업계 관계자는 "캐피탈사가 친환경차 할부대금을 차환하거나 영세·중소 가맹점 카드대금을 지급하는 목적으로 ESG 채권을 발행하고 있는데 부가적인 가치가 있는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SG채권 발행을 통해 조달된 자금이 인수 자금으로 사용되거나 조달 목적이 ESG 관련 사업과 중복으로 인정되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예컨데 A회사가 친환경에너지회사 B를 인수하기 위한 자금 마련 목적으로 ESG채권을 발행할 경우 해당 자금은 이미 투자돼 운영되고 있는 B기업을 인수하는 데 쓰일 뿐 ESG에 부합하는 부가가치를 창출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A회사가 친환경에너지 공장을 설립한다고 할 때도 이를 위해 ESG채권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하지만 공장 설립을 맡은 C건설사가 사업 진행을 위해 자금을 ESG채권으로 조달할 경우에도 발행 목적이 인정될 수 있다. 결국 같은 사업을 대상으로 중복으로 프로젝트의 적격성을 인정해 주는 셈이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ESG 채권시장의 성장을 위해 조달의 안정성이나 관련 프로젝트의 유기적 연결성을 인정해줄 필요가 있다는 진단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신용평가 업계 관계자는 "현재의 ESG채권 인정 범위와 기준이 미흡한 것은 사실이나 조달 자금의 안정적인 차환이 가능해야 ESG채권 시장도 성장할 수 있기 때문에 시장의 태동기에는 필요한 부분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친환경·지속가능 프로젝트 등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산업의 유기적인 관계와 협업이 중요하기 때문에 참여하는 주체의 적격성을 인정해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정부는 올해 상반기까지 한국형 녹색 분류체계(K-Taxamony)를 마련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신용평가사, 금융사, 일반기업들도 ESG기준을 재정립할 가능성도 남아있다. 

ⓒ새로운 눈으로 시장을 바라봅니다. 딜사이트 무단전재 배포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