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돈이 빠지면 가치가 드러난다
유동성 풍부하던 시절 지나…현실에 맞는 기업가치 책정 필요
이 기사는 2022년 05월 27일 08시 02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딜사이트 강동원 기자] "물이 빠지면 누가 발가벗고 수영을 하는지 알 수 있다"


미국 투자자 워렌버핏은 지난 2001년 주주에게 보내는 이메일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경제가 호황일 때는 기업 대다수가 성장하지만, 침체기로 접어들면 경쟁력을 가진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의미다. 당시 미국은 넘쳐나는 유동성으로 성장한 기업들의 주가가 폭락하는 '닷컴버블'이 발생한 시기였다. 닷컴버블로 인한 투자손실 규모는 수조 달러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도 닷컴버블은 있었다. 정부가 1997년 발생한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중소·벤처기업 육성정책을 펼치자 시장에는 대규모 자금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인터넷 등 정보통신기술(IT) 산업이 주목받으면서 투자 열풍이 불었고 골드뱅크·드림라인의 주가수익비율(PER)이 9999배를 넘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말은 미국과 같이 투자자의 대규모 손실이었다.


악 20년이 지난 지금, 잊혔던 닷컴버블이 재현될 조짐을 보인다. 지난 2020년 코로나19 확산세가 본격화하고 '동학개미운동'이 시작되면서 국내 주식시장에 충분한 유동성이 유입됐다. 특히 기업공개(IPO) 시장에서는 SK바이오팜·카카오게임즈 등 조 단위 시가총액에 도전하는 기업들이 연달아 등장했고 '따상(시초가가 공모가 두 배 뒤 상한가)'이라는 용어도 등장할 정도였다.


하지만 금리 상승기에 접어들면서 IPO 시장 내 유동성이 급격히 줄어들자 사업 경쟁력을 가지지 못한 기업들의 본모습이 드러나고 있다. 물리보안 사업에 높은 매출 의존도를 가진 SK쉴더스는 아직 충분히 성장하지 못한 사이버보안을 내세워 IPO에 나섰다가 투자자에게 철퇴를 맞았다. 구글·애플 등 해외 대기업 틈새 속에서 고전하고 있는 원스토어도 매출 내 비중이 10%대에 불과한 컨텐츠 사업을 앞세우다가 상장을 철회했다.


"공모가가 매우 싸다"고 강조한 청담글로벌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청담글로벌은 IPO 초기 단계에서 IT 플랫폼 기업임을 강조했으나 실제 사업은 화장품 유통에 치우쳐 있다. 또, 매출의 90% 이상이 중국에서 발생하는 데다 브랜드엑스코퍼레이션, 실리콘투 등 비교기업보다 높은 시가총액에 도전하는 점도 약점으로 지목됐다.


그 결과 청담글로벌은 기관 수요예측 이후 공모가를 희망밴드(8400~9600원)보다 낮은 6000원으로 확정했다. 회사는 "어려운 시장 상황에도 관심을 가져준 투자자에게 수익을 드리고자 확실하게 할인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청담글로벌은 사업 확장을 위해 자금조달이 시급한 상황이다. 공모가 할인을 자신들의 기대보다 낮은 기업가치를 인정받은 것에 대한 '핑계'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바이오기업의 현실은 더욱 암울하다. 올해 애드바이오텍·바이오에프디앤씨·노을이 공모흥행에 실패했다. 각 회사의 현재 주가는 공모가를 한참 밑돈다. 그러나 이점 역시 이들이 자초한 결과다. 최근 IPO에 나서는 바이오기업 대부분은 상장 3~4년 후 미래 추정 순이익으로 기업가치를 책정하고 있다. 추정 순이익 근거는 회사 측이 제시하는 자료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섣불리 투자를 결정하기 힘든 구조다.


만약 이들이 2020년 유동성이 넘쳐나던 시절에 IPO를 진행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미래 추정 순이익을 확인해줄 2024~2025년도 아닌 옥석 가리기가 시작된 2022년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말했으며 조선 시대 선비들은 수분지족(守分知足, 분수를 지키고 만족할 줄 알라는 뜻)을 강조했다. 부디 IPO에 나서는 기업들이 분수에 맞는 가치를 책정해 닷컴버블이 재현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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