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IPO 한파에 침체된 '후기 투자'
악화된 투자환경에도 생존 전략 찾아야
이 기사는 2022년 06월 08일 08시 47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12조7000억원의 공모금액을 모은 LG에너지솔루션의 지난 1월 27일 상장 기념식 모습.


[딜사이트 문지민 기자] 현대엔지니어링, 대명에너지, 보로노이, SK쉴더스, 원스토어, 태림페이퍼···


올 들어 상장 철회를 결정한 기업들이다. '유니콘 특례 1호' 바이오 업체 보로노이, 3조원 이상의 기업가치(밸류에이션)로 예상된 SK쉴더스, 또 다른 SK그룹 계열사 원스토어 모두 상장 문턱을 넘지 못했다.


연간 공모 규모 20조8000억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지난해와 비교하면 올해 기업공개(IPO) 시장은 차갑게 얼어붙었다. 8일 대신증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IPO를 통해 상장한 기업 수는 23개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28% 줄었다. 수요예측 평균 경쟁률도 876 대 1로, 1154 대 1을 기록한 지난해보다 떨어진다. 공모금액은 13조2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72.5% 늘었으나, 그중 12조7000억원이 LG에너지솔루션 공모에서 모인 것을 고려하면 사실상 큰 폭의 감소세다. 


이처럼 최근 IPO 시장이 얼어붙으며, 비상장 기업에 투자한 벤처캐피탈이나 사모펀드(PEF) 운용사들의 투자금 회수(엑시트)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상장 후 매각이 누구나 원하는 엑시트 시나리오지만, 상장 문턱이 높아지면서 자금이 묶여버린 탓이다. 투자금을 회수한 후 다른 투자처를 발굴해 신규 투자에 나서는 선순환 구조가 이어져야 하지만, 회수가 어려워지며 신규투자도 위축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됐다.


특히 규모가 커지는 후기 단계에 대한 투자심리 위축은 더 심하다. 이미 앞선 단계에서 밸류에이션은 오를 만큼 올랐고, 최근 시장 환경이 더 이상 높은 가치를 인정받기는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이에 투자자들은 점점 초기 단계로 이동하는 모양새다. 실제로 초기투자 전담조직을 신설하거나 아예 엑셀러레이터(AC)를 설립하는 벤처캐피탈들이 늘고 있다. 한국투자액셀러레이터를 출범한 한국금융지주를 비롯해 초기투자 전담팀인 KBFC를 신설한 KB인베스트먼트, 그 외 스마일게이트인베스트먼트, 아주IB투자 등이 초기투자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사모펀드 운용사도 갈수록 초기투자를 확대하는 추세다. 한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기존에는 사모펀드 운용사들이 보통 프리IPO 단계에서 투자에 나섰지만, 최근에는 그 전 단계에서 투자에 참여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상장 불확실성이 커지며 아예 낮은 밸류에이션에서 투자해 가치를 높이는 데 집중하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투자자들이 갈수록 초기 단계로 이동하면서 후기투자유치를 앞둔 기업들은 투자가 끊길까 노심초사하는 모습이다. 시리즈B 투자유치를 앞둔 한 스타트업 대표는 "올 들어 투자사들의 투심이 급격히 악화돼 1~2주 사이에 밸류에이션이 급락하는 등 투자받기 너무 어려워졌다"며 "초기투자를 받고 공장을 짓다가 투자가 끊겨 중단하거나 급히 지인에게 돈을 빌리는 업체도 많다"고 한탄했다.


후기투자가 활발해지기 위해서는 IPO 시장 회복이 급선무다. 물론 시장이 단기간에 회복되기는 쉽지 않다. 시장 급랭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글로벌 증시 침체와 루나 폭락 사태로 인한 암호화폐 시장 초토화, 높아진 바이오 기업 상장 문턱 등 대내외적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침체된 IPO 시장 환경이 회복되기만을 넋 놓고 기다려서는 안 된다. 투자회사는 기존에 조성한 펀드를 효율적으로 활용해 투자를 이어가야 하고, 투자를 받아야 하는 기업들도 스스로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를 정립해 나가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정치권도 투자환경이 선순환 구조로 돌아갈 수 있도록 힘을 모으는 노력이 필요하다. 각자의 생존 전략을 찾아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모습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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