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디지털 손보사의 혁신은 패러다임 전환일까
2019년 캐롯손보에 이어 신한EZ손보‧카카오손보 연내 출범
이 기사는 2022년 07월 14일 08시 16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딜사이트 한보라 기자] 보험업계에 '디지털 손해보험사'라는 새 바람이 불고 있다. 신한금융지주의 신한EZ손해보험, 카카오그룹의 카카오손해보험이 새로운 시장 플레이어로 등장하면서다. 지난 2019년 캐롯손해보험이 한화손해보험의 자회사로 설립된 뒤 3년 만에 업계 풀(pool)이 늘어났다.


이들이 한결같이 앞세우는 단어는 혁신과 패러다임(paradigm)이다. 패러다임이란 미국의 철학자인 토머스 쿤이 자연과학을 설명할 때 처음 제시한 개념이다. 쿤은 과학은 여러 이론이 공존하고 경쟁하는 '이전(pre)' 단계에서 한 이론이 우월적 지위를 차지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거쳐 '정상(normal)' 단계로 나아가게 된다고 봤다. 기존의 패러다임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상 현상이 나타나면 혁신적인 새로운 이론이 등장하게 되므로 과학은 끊임없이 본질에 다가갈(발전할)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철학이었다.


진일보한 디지털 기술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상품,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해 노후화된 보험시장에 패러다임 전환을 불러오겠다. 디지털 손보사들이 꿈꾸는 장밋빛 미래는 휘황찬란하지만 명확한 청사진은 보이지 않는다. 선발주자로 나선 캐롯손보가 출범 이래 선보인 상품 가운데 그나마 대중 인식이 높은 상품도 주행 거리만큼 보험료를 낸다는 '퍼마일 자동차 보험'뿐이다.


업계 안팎의 의견을 취합해봤을 때 퍼마일 자동차 보험의 경쟁력은 정교하게 산정한 보험료에서 나온다. 주행 거리 측정 기술을 활용해 사회 초년생들에게 부담스러울 수 있는 자동차 보험료를 합리적으로 낮춰준 결과물이라는 것. 역설적으로 따지면 주행 거리가 긴 보험 계약자에게는 별다른 메리트가 없는 상품이라는 의미다. 보험사 입장에서는 MZ세대(밀레니엄‧Z세대)가 향후 주 고객층으로 발돋움하기 전에 눈도장을 찍어두겠다는 항변이지만 당장 돈줄이 팍팍한 회사에서 10~20년 뒤를 내다보겠다는 이야기가 어불성설처럼 들리는 건 어쩔 수 없다.


신한EZ손보나 카카오손보는 좀 다를까. 아직까지 두 디지털 손보사가 선보인 상품은 없다. 다만 카카오모빌리티가 선보인 '카카오내비로 탄 만큼 내는 운전자보험(카카오 운전자보험)'으로 카카오손보의 향후 라인업을 내다볼 수 있을 듯하다. 퍼마일 자동차보험과 카카오 운전자보험을 비교해봤을 때 주행 거리 측정에 있어 캐롯손보가 자체 개발한 기기를, 카카오모빌리티의 제휴 보험이 카카오내비 앱을 사용한다는 점을 빼면 두드러진 차이점은 없다.  


퍼마일 자동차 보험의 시장 점유율은 0%대에 불과하다. 0%대 점유율을 두고 서로 다툼하는 것을 업계 패러다임 전환으로 보기는 어렵다. 보험업계는 디지털 손보사를 두고 "미니보험 등의 수익성이 얼마나 되겠냐"라며 "워낙 보수적인 업계인 만큼 이런 변화도 새롭게 느껴지는 게 아니겠냐"며 대신 항변했다. 물론 선두주자나 후발주자나 아직 시장 저변을 다져나가는 상황인 만큼 광폭 행보를 보이기엔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추세에 혁신이나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여주는 게 맞나. '개선' 정도로 정정하는 게 옳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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