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허울뿐인 통신사 고객 중심
고객보다 정부 눈높이 맞추기 급급
이 기사는 2022년 08월 18일 07시 49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지난 7월 11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통신3사 CEO 간담회가 열렸다. (출처=과기정통부)


[딜사이트 최지웅 기자] 반려견 훈련사 강형욱이 출연하는 KBS 예능 프로그램 '개는 훌륭하다'를 볼 때마다 혀를 내두르는 장면이 있다. 견주가 쩔쩔맬 정도로 말을 전혀 듣지 않는 개들이 강 훈련사만 만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순한 양으로 돌변해 신기하게 느껴졌다. 과도한 공격성으로 주인까지 물었던 맹견들도 강 훈련사가 목줄을 잡으면 꼼짝을 못 했다. 


최근 SK텔레콤을 시작으로 5G 중간요금제 도입을 서두르고 있는 이동통신 3사의 모습이 그랬다. 이들 통신사는 지난 2019년 4월 5G 상용화 이후 3년 넘게 극과 극을 달리는 요금 체계를 고수해왔다. 데이터 제공량 기준으로 10~12GB와 110~150GB로 양분된 5G 요금제는 선택의 폭이 좁아 지속적으로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하지만 통신사들은 수익 감소를 우려해 5G 요금제 개편을 꺼렸다.


미지근한 모습을 보였던 통신사들을 움직인 건 정부였다. 지난 7월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통신 3사 CEO들과 면담을 가진 뒤 통신사들의 태도는 바로 바뀌었다. 당시 이 장관은 "필수재인 통신서비스의 접근권 제고와 선택권 확대를 위해 이용자 수요에 맞는 5G 요금제가 출시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SK텔레콤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날 과기정통부에 중간요금제 출시 신고서를 제출했다. 이달 5일 5만9000원에 데이터 24GB를 제공하는 중간요금제를 출시하면서 기준점을 제시했다. 그 뒤를 이어 KT가 오는 23일 6만1000원·30GB 중간요금제를 선보일 예정이다. LG유플러스도 조만간 중간요금제 출시를 신고할 것으로 보인다.


5G 상용화 4년 차에 접어들어서야 요금제에 변화가 생겼다. 여전히 소비자 눈높이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지만 요지부동이었던 통신사들이 정부 등판으로 태도를 바꾸는 마법 같은 일이 벌어졌다. 마치 문제 많은 반려견을 단숨에 제압하는 강 훈련사를 만난 것처럼 말이다.


현재 통신사들은 중간요금제뿐 아니라 5G 품질 개선을 위한 투자 확대 압박도 꾸준히 받고 있다. 올해 통신 3사의 설비투자(CAPEX) 규모는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통신 3사는 올해 2분기 연속 합산 영업이익이 1조원을 돌파할 만큼 많은 돈을 벌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투자에 인색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이 역시 정부가 목줄을 죄기 시작하면 태도를 달리할지도 모른다.


통신 3사가 고객보다 정부를 우위에 놓고 경영활동을 벌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물론 정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규제 산업의 딱한 처지를 모르는 건 아니다. 하지만 고객이 아닌 정부 눈높이를 맞추는 통신사들의 태도가 썩 유쾌하지만은 않다. 겉으로는 고객 중심을 외치고 있기에 불만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통신 3사는 일제히 핵심 경영 키워드로 고객 중심 서비스를 내세우고 있다. 3사 홈페이지를 잠깐 살펴봐도 '고객이 더 행복해지는 LGU+', '국민의 편익을 도모하는 최고의 국민기업 KT', 'SK텔레콤의 모든 서비스 중심에는 고객이 있습니다' 등 듣기 좋은 수식어가 가득하다. 통신사들이 기업 성장에 필요한 핵심 가치를 고객에서 찾고 있다는 의미로 읽히지만 크게 와닿지 않는다. 정작 목줄을 쥐었을 때 말을 듣는 대상은 따로 있어서다. 통신사들의 허울뿐인 고객 중심에 반감을 느끼는 이용자의 심정도 헤아렸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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