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제강 브라질사업 미스터리]
숙원사업 흑자전환후 매각, 룰라 '나비효과'
룰라 지지로 건립돼 내달 당선시 매각 불허 염려…1조원 추가투자도 부담
이 기사는 2022년 09월 10일 08시 00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브라질 CSP 제철소 전경. 자료사진/동국제강


[딜사이트 양호연 기자] 동국제강의 '3대에 걸친 숙원사업'이 막을 내렸다. 최근 동국제강은 브라질 쎄아라(Ceara)주 뻬셍에 위치한 CSP 제철소를 아르셀로미탈(ArcelorMittal)에 매각했다. '애물단지'로 여겨지던 CSP 제철소는 동국제강의 주도로 발레(Vale)와 포스코 등이 합작해 건설한 회사인 만큼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적자를 거듭한 끝에 5년만에 흑자전환에 성공했지만 동국제강이 매각의 길을 택할 수밖에 없던 건 추가 투자에 따른 재무적 부담과 헤알화 환리스크, 주력 사업 변화 등 여러 요인이 따른다.


브라질 북동부 쎄아라(Ceara)주 뻬셍 산업단지에 위치한 CSP 제철소는 동국제강과 포스코, 브라질 발레(Vale)사가 합작해 건설한 고로 제철소다. 내용적(內容積)은 3800㎥ 규모로 연간 300만t의 슬래브(철강 반제품)를 생산할 수 있는 점이 특징이다. 고로 외에도 원료 야적장, 소결, 제선, 제강, 연주 공장 등을 갖췄다. 


동국제강은 지난 12일 이사회를 통해 브라질 CSP 제철소 보유 지분 30% 전량을 8416억원(6억4620만 달러, 환율 1302.5원·달러 기준)의 가치로 아르셀로미탈(ArcelorMittal)에 매각하기로 의결했다. 포스코와 발레등의 나머지 주주도 브라질 CSP 제철소 지분 모두를 아르셀로미탈에 매도해 총 매각 금액은 21억5400만 달러다. 


브라질 북동부 세아라주(州)에 있는 일관제철소 CSP는 연산 300만t 생산능력을 보유한 일관제철소다. 자료/구글 지도 갈무리

◆ 흑자전환 CSP 손 놓은 이유는..."결손금 해소 역부족"


CSP 제철소가 동국제강 3대에 걸친 숙원사업으로 여겨지는 만큼 업계에선 동국제강의 매각 결정이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오랜 적자 끝에 흑자전환한 만큼 향후 성과를 기대해 볼 만 하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기대와 달리 지난해 기록한 흑자는 그간 쌓인 결손금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다. CSP 제철소는 준공 초기부터 정상화에 큰 어려움을 겪어온 데다가 누적 손실만 2조원에 달한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시스템에 따르면 CSP제철소는 2017년부터 2020년까지 4년간 누계 당기순손실이 2조2251억원이다. 게다가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CSP에 출자한 금액만 1조300억원 수준이다. 


동국제강 부채비율 추이. 자료/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이에 따라 동국제강의 CSP 제철소 매각 대금은 모두 CSP의 신주인수대금으로 납입돼 채무 변제에 사용될 예정이다. 이로써 동국제강은 CSP에 대한 지급보증 금액 1조원 가량(7억8000만달러)을 모두 해소할 수 있게 됐다.


추가 투자 부담도 매각 결정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CSP 제철소는 하공정 단계를 구축하지 못해 사실상 '반쪽짜리 일관제철소'에 머물러 있었다. 이에 따라 단가를 낮추기 위한 규모의 경제 측면에서 추가 투자의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하지만 사측은 추가 투자 비용이 수천억에서 조 단위에 이르는 만큼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동국제강 관계자는 팍스넷뉴스에 "CSP의 고로 수명을 고려할 때 적어도 2025년에는 착공에 돌입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며 "그에 따른 투자 비용이 32억달러인 점을 감안할 때 최소 1조원 이상의 추가 투자가 이뤄져야 해 재무적 부담이 상당하다"고 설명했다.


헤알-달러 환율 추이. 자료/브라질 중앙은행

브라질 화폐인 헤알화 환율이 지속적으로 약세를 보이는 등 '환 리스크'도 매각의 배경이 됐다. 동국제강은 2018년과 2020년 CSP의 영업이익이 각각 1억7000만달러, 2000만달러를 기록했다. 하지만 환 관련 손실로 인해 4억9000만달러, 5억2000만달러의 순손실이 발생했다.


앞서 브라질 정부는 지난해 3월 이후 기준금리를 4차례 연속 인상하고 통화량 감축·물가 관리에 집중해 헤알화 가치가 다소 안정화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2010년대 초반과 비교할 때 약 3분의1 수준에 그치는 만큼 추가 환차손 우려는 여전하다.


박현욱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동국제강의 브라질 CSP 제철소 매각과 관련해 "헤알화에 따라 지분법손익(환평가손익)의 부침이 상당해 실적 가시성을 저해하는 한편 주가 할인요인으로 작용해 왔다"며 "이번 CSP 제철소 매각이 실적 불확실성의 해소와 신용등급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설명했다.


이 외에도 후판에서 봉형강과 컬러강판 중심으로 주력 사업을 전환한 점도 매각 결정에 주효했다. 동국제강이 CSP 제철소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기획하던 당시만 해도 후판이 중심이 됐다. 후판의 원료인 슬라브 자체 조달과 해외 공급을 목적으로 CSP에 투자한 셈이다.


하지만 동국제강은 주력제품인 봉형강(철근·H형강 등), 가전과 고급 건축 내외장 마감재에 사용되는 컬러강판(브랜드명 럭스틸) 사업에 주력하겠다며 사업 구조를 재편한 상태다. 이에 따라 후판 생산 비중을 낮추고 봉형강과 도금강판 및 고부가가치 제품인 컬러강판 제품군을 강화하는 노력을 지속해 왔다. 그 결과 동국제강은 올 상반기 연결 기준 매출액 4조4446억원, 영업이익 4995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각각 38.3%, 57.9% 증가한 셈이다.


사업 포트폴리오 구성 비중(%) 변화 추이

◆ 지난해부터 매각 시점 숨고르기...형제 이견 없었다


팍스넷뉴스 취재 결과 동국제강은 CSP 제철소 매각과 관련해 지난해부터 내부 검토를 이어온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상반기 발레가 본격적으로 CSP 제철소 매각을 추진하기 위한 '물밑작업'에 나섰기 때문이다.


재계에 따르면 당시 동국제강은 CSP 제철소 매각에 반대 의사를 보였지만 추가 투자에 따른 재무부담과 사업성 등을 고려해 매각을 결정했다. CSP 제철소의 매각 의사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장세주 회장과 장세욱 부회장의 이견은 없던 것으로 알려졌다.


브라질 CSP 제철소 경영 실적 추이(단위:억 달러). 자료/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일각에선 발레가 지난해 상반기부터 매각 '물밑작업'을 추진한 배경에는 브라질 현지 정치적 요인이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브라질은 다음달 2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데 유력 당선 후보에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 전 대통령이 거론된다.


룰라 후보는 2005년 동국제강이 CSP 제철소 건설 사업을 공식화한 데 큰 영향을 미친 인물로 꼽힌다. 당시 룰라 대통령은 장세주 회장을 대통령궁으로 초청해 동국제강과 발레간 상호 협력식을 주재하는 등 전폭적 지지를 약속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CSP 제철소 매각을 원하는 발레 입장에선 대선 전 매각을 서두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룰라로 인한 '나비효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룰라 후보는 CSP 제철소에 '씨앗을 뿌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대선 승리로 집권하게 되면 일자리 창출 등 지역 경제 부흥 등을 이유로 발레의 매각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측면에서 발레가 매각 의사를 서둘러 밝힌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브라질 CSP 제철소 주요 연혁

룰라 대통령은 금속 노동자 출신으로 '좌파의 아이콘' 등으로 불린다. 대통령 집권 기간 브라질의 국가부채를 해결하는 등의 업적을 기록 했지만 퇴임 후 뇌물 수수 혐의로 복역했다. 5일(현지시간) 브라질 현지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룰라 후보는 재선에 도전하는 자이르 보우소나루 현 대통령을 지지율 13%p 차로 앞섰다.


한편 이번 인수 계약은 브라질 독점당국의 'CADE(브라질 독점 금지)' 승인 등을 거쳐 올 연말 확정될 예정이다. 브라질 CSP 제철소에 근무 중인 동국제강 소속 임직원의 거취 문제는 아직 결정된 사항은 없으며 내부 논의가 진행 중이다.


동국제강 관계자는 "지난 7월 중국법인(DKSC)과 연합물류 유한공사 지분 90%를 400억원의 차입금 지급 보증 포함 970억원의 기업가치로 매각한 바 있다"며 "글로벌 복합 위기에 대비하기 위한 선제적 대응 차원에서 CSP 매각을 결정한 것인 만큼 잠재 리스크를 최소화해 기업 신용도가 높아질 토대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CSP 제철소를 인수한 아르셀로미탈은 60여 국가에 지점을 둔 세계 2위 글로벌 철강사로 락시미 미탈(Lakshmi Mittal) 회장이 2006년 당시 세계 1‧2위 철강사인 아르셀로 그룹과 미탈 그룹을 합병해 탄생했다. 연산 조강생산능력은 6900만t으로 지난해 매출 766억 달러, EBIDTA 194억 달러, 순이익 150억 달러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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