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남의 돈이 무섭다
저금리 때 무모한 사업확장…고금리 국면 전환에 부실화
이 기사는 2022년 11월 29일 08시 28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서울 도심의 아파트 건설 현장 모습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 사진=박성준 기자


[딜사이트 박성준 기자] 어느 업종이라고 다를까마는 최근 부동산시장은 자금조달의 전쟁터다. 지난 10월 한국신용평가에서 발표한 일부 건설사의 PF(프로젝트 파이낸싱)우발채무 보고서에서 위기감이 커졌고, 이후 레고랜드 사태까지 기름을 끼얹어서 자금조달 창구가 엉망이 됐다.


이론적으로 담보물이 없는 상태에서 프로젝트의 사업성만 보고 대출을 일으키는 PF는 항상 위기를 내포하고 있다. 사업성만 증명할 수 있다면 자신의 돈을 거의 들이지 않고도 사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용으로 묶인 대주와 차주는 운명공동체가 된다. 결국 사업의 결말은 모든 주체가 같이 잘되거나 혹은 모두 망하는 양자택일뿐이다.


안타까운 점은 최근 상황이 급작스럽게 변하자 모두 망하는 길로 접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시장에서 기존의 신용이 먹히지 않자 자금조달 비용은 급상승했다. 채권과 어음의 금리는 높아지고, 상환 만기일은 점점 짧아졌다. 각 건설사와 시행사, 신탁사 등 부동산 업계의 모든 플레이어는 현금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그나마 자산규모가 큰 대기업들은 비빌 언덕이라도 있다. 롯데그룹의 경우는 최근 전 계열사를 동원해 건설사 자금조달에 나섰다. 롯데케미칼 등 최대주주의 자금대여나 주주배정 유상증자까진 예상했어도, 건설사와 지분관계가 없는 그룹사까지 지원하는 것은 예상 수준을 넘어선 행보다. 그만큼 연말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PF우발채무가 부담스럽다는 의미이며, 그 규모가 만만치 않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신용평가 보고서 지적 후 부도설까지 돌았던 태영건설의 경우도 위태하기는 마찬가지다. 태영건설 역시 공정자산총액이 10조원을 넘는 대기업집단이지만 여타의 대기업보다 상황이 어렵다. 그룹 내 건설사가 자산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맏형 노릇을 하다 보니 계열사의 지원을 받기가 쉽지 않다.


대기업집단에 속하는 건설사가 이 정도의 위기에 놓인다면, 그 아래 규모의 중견 건설사들의 어려움은 불 보듯 뻔하다. 이들의 차입금 비중은 더욱 크고 현금 보유량은 더 적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 금리는 고점에 다다르지 않았으며, 내년에 만기가 돌아올 우발채무의 규모가 더 크다는 점도 건설사들의 전망을 암울하게 만든다.


갑작스럽게 다가온 부동산 업계의 자금경색 사태는 그간 이들이 얼마나 무리하게 남의 돈을 끌어와 무모한 사업을 벌였는지를 증명한 것이다. 진흙탕 싸움으로 번진 정비사업 수주전과 로또분양 열풍 등도 이와 무관치 않다. 어떻게든 수주만 따내고, 착공만 들어가면 그만이라는 판단이 현재의 자금경색 사태로 파생된 것이다.


사회적 분위기도 한 몫 했다. 부동산 사업이 마치 빗나가지 않는 복권처럼 여겨졌고, 대출에 대한 경계심도 너무 안이했다. 사회 전체가 돈의 무게를 너무 가볍게 여긴 대가다.


물론 적절한 레버리지 사용은 자본시장에서 현명한 대처법이다. 몇 년 간 이어져 온 유동성 파티는 건설사와 증권사들에게 단비로 작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과하면 독이 된다. 이번 기회에 남의 돈이 무섭다는 교훈을 많은 건설사들이 배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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