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채 북클로징]
확 늘어난 주관사단…치열한 경쟁 속 '을' 자처
③'캡티브 영업' 상수로 자리잡아…증권사 '자기계정'으로 수요예측 참여도
이 기사는 2023년 12월 18일 08시 00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여의도 증권가(사진=딜사이트)


[딜사이트 백승룡 기자] 올해 공모 회사채 시장의 특징 중 하나는 주관사단의 수가 대폭 늘어났다는 점이다. 고금리 상황에서 투심이 불확실하다 보니, 기업들이 여러 주관사를 앞세워 투자수요를 확보하려는 것이었다. 증권사들의 딜(Deal) 수임 경쟁이 치열해진 영향이기도 했다. 주관 경쟁에 내몰린 증권사의 영업 방식이 도를 지나쳐 시장을 훼손한다는 지적도 연이어 제기됐다.


◆ 500억원 모집에 주관사 8곳 몰려…투자수요 모집 부담, 증권사 주관 경쟁 여파


올해 첫 회사채 수요예측 주자로 나섰던 KT는 ▲KB증권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신한투자증권 ▲삼성증권 등 총 5곳의 증권사를 주관사단으로 꾸렸다. 지난해 초 발행 당시 4개 증권사를 주관사로 뒀던 KT는 올해 주관사단 규모를 추가로 늘렸다. KT는 AAA의 신용등급으로 국내 최상위 신용등급을 보유한 곳이지만, 지난해 레고랜드 사태 이후 연초 투자수요가 불확실하다는 판단에 주관사 수를 늘린 것이었다.


같은 달 포스코(AA+), LG유플러스(AA0), GS에너지(AA0), LG화학(AA+) 등 우량등급 기업들도 줄줄이 5곳의 증권사를 주관사로 두고 발행에 임했다. 호텔롯데, 롯데렌탈, 롯데하이마트, 롯데쇼핑, 롯데지주, 롯데케미칼 등 롯데그룹 계열사들은 각각 주관사를 6곳이나 꾸렸다. HD현대두산인프라코어는 지난 3월 500억원 규모 회사채를 발행하면서 ▲KB증권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신한투자증권 ▲삼성증권 ▲미래에셋증권 ▲키움증권 ▲대신증권 등 무려 8개 증권사와 대표주관계약을 맺기도 했다.


통상 회사채 시장에서 다수의 주관사를 두는 것은 투자수요 확보에 대한 '불안감의 발로'로 해석되곤 했다. 그러나 금리 불확실성 등으로 금융시장이 불안한 흐름을 보이자 대규모 주관사단이 '상수'로 굳어지는 모습이 됐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확실히 회사채 발행 때마다 주관사의 수가 늘어나긴 했다"며 "금융시장이 불안정하다고 느끼다 보니 여러 증권사를 앞세워 자금을 끌어모으겠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증권사들의 주관 경쟁이 치열해진 탓도 있다. 한 증권사 본부장은 "부채자본시장(DCM)은 몇몇 대형 증권사를 중심으로 점유율이 고착화됐던 시장이었는데, 최근 수년간 일부 증권사들이 DCM 부문에 힘을 주기 시작하면서 주관 경쟁이 치열해졌다"며 "금융그룹 증권사들이 은행, 보험, 자산운용사, 캐피탈사 등 계열사의 수요예측 참여를 약속하면서 '캡티브 영업'에 나서니 기업들도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캡티브 영업' 넘어 '자기계정' 인수까지…시장 훼손 논란도


본래 발행사 우위의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던 회사채 시장은 증권사들의 딜 수임 경쟁까지 한층 치열해지면서 더욱 가파르게 기울어졌다. 일부 증권사들은 '을'을 자처하면서 시장을 훼손하는 모습이 나타나기도 했다. 올해 대표적인 게 GS건설의 회사채 발행 과정에서 단독 대표주관였던 NH투자증권이 유효수요를 배제하고 증액을 시도하려던 사례였다.


지난 2월 1500억원 규모 회사채 수요예측을 진행한 GS건설은 공모 희망금리밴드로 개별민평금리 대비 -30~+170bp(1bp=0.01%포인트)를 제시, 이 구간에서 2190억원의 매수주문을 받았다. 모집액인 1500억원은 개별민평 대비 +140bp에서 채웠고 이보다 높은 금리에서 690억원의 투자수요가 추가로 있었다. 이는 GS건설이 모집 금액인 1500억원만 조달한다면 가산금리는 +140bp가 되겠지만, 증액을 할 경우 가산금리가 +170bp까지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했다.


문제는 GS건설과 대표주관사인 NH투자증권이 발행액을 2500억원으로 증액하면서 금리를 개별민평 대비 +140bp에서 고정시켰다는 점이었다. 1500억원까지만 청약을 받고 나머지 1000억원은 NH투자증권이 인수하는 방식을 내세운 것이었다. 이는 정상적으로 금리밴드 내에 참여한 유효수요 물량을 배제하고 증액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시장의 공분을 샀고, GS건설은 결국 청약 직전 증액을 철회했다.


딜 수임을 위해 증권사들이 '캡티브 영업'을 넘어, 자기계정(PI)으로 수요예측에 참여하는 사례도 빈번해지고 있다. 지난 7월 롯데쇼핑의 회사채 발행 과정에서는 다수 주관사가 수요예측에 일제히 참여, 롯데쇼핑의 발행금리를 낮춰준 정황이 드러난 바 있다. 금융투자협회 모범규준에 따르면 주관사는 공모 수요예측에 참여할 수 없지만, 만기가 다를 경우 별개의 채권으로 간주된다는 점을 활용한 것이었다.


당시 롯데쇼핑은 KB증권, 한국투자증권, 신한투자증권, 미래에셋증권, 삼성증권, DB금융투자, 키움증권 등 7곳에 달하는 주관사단을 꾸리면서 ▲2년물 600억원 ▲3년물 1200억원 ▲5년물 200억원 등 2000억원 규모 모집에 나섰다. 롯데쇼핑은 3년물과 5년물에서 각각 6~7개 주관사를 둔 반면, 2년물 주관사로는 한국투자증권만 뒀다. 이후 한투를 제외한 주관사들은 2년물 수요예측에 일제히 참여해 투자수요를 형성했다. 특히 롯데쇼핑의 개별민평금리보다 크게 낮은 '언더 금리'에 집중적으로 매수주문을 넣어 2년물이 낮은 금리로 완판되도록 하는 '작업'도 이뤄졌다.


IB업계 관계자는 "발행사와 증권사가 시장의 사각지대를 파고드는 동안 회사채 시장의 제도는 10여 년째 방치돼 있다 보니 여러 악습이 생겨나고 있다"며 "공정한 시장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금융감독원 등 당국이 나서서 제도를 손볼 시점"이라고 말했다.


롯데쇼핑이 지난 7월 모집한 2년물(600억원)이 대부분 주관사단 물량으로 채워졌다.(자료=IB업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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