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틀어진 75년 '동맹관계'
고려아연, 영풍과 물리적 거리두기…반복되는 갈등에 피로감
이 기사는 2024년 04월 08일 08시 28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서울 논현동 영풍빌딩.(제공=영풍)


[딜사이트 최유라 기자] 75년 동맹 관계가 틀어졌다. 정관변경, 배당금 등 정기 주주총회 주요 안건을 놓고 대립했던 고려아연과 영풍이 주총 이후에도 갈등을 이어가고 있다. 신사업에 대한 견해차로 시작된 싸움은 지분경쟁, 주총 표대결을 거쳐 이제는 그룹 비철금속 유통 계열사 서린상사로 번졌다. 영풍은 고려아연의 최대주주인 만큼 당장 '완전한 독립'을 실현할 가능성이 작다. 그러나 지속된 갈등에 피로감이 누적된 고려아연은 함께 사용하던 영풍빌딩을 떠나며 헤어질 결심까지 한다. 


두 기업은 재계의 대표 '한 지붕 두 가족'이었다. 이들의 동업은 1949년 故 장병희·최기호 창업주가 영풍그룹을 설립한 후 75년간 이어졌으나 고려아연이 신사업 추진 과정에서 현대차, 한화, LG화학 등 외부 우군을 통해 우호지분을 모으면서 사이가 틀어졌다. 결국 기업간 벽이 생기고 갈등이 유발돼 이례적으로 주총 안건을 놓고 표대결까지 벌였다. 


결과적으로 성과를 논하면 절반의 성공. 고려아연이 주총에 상정한 결산배당안건이 통과된 반면 특별결의 대상 '정관변경'(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국내 법인에도 허용하도록 하는 내용) 안건이 영풍의 반대로 부결됐기 때문이다. 


주총이 끝났으나 주도권 싸움은 서린상사로 불씨가 옮겨붙었다. 고려아연이 영풍과의 우호를 상징하는 서린상사에 대한 경영권 분리를 시도하면서다. 서린상사 인력, 정보 교류 등 영풍과의 협업 중단 수순을 밟는 것인데, 경영권을 가진 영풍이 이를 막으며 법적공방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쯤 되니 양측은 갈등을 봉합할 생각이 전혀 없는 듯하다. 어쩌면 계열분리를 할 때가 됐다고 판단한 걸까. 고려아연이 먼저 물리적, 업무적 분리를 꺼내 들었다. 45년째 사용하던 서울 논현동 영풍빌딩을 떠나 종로로 본사를 이전한다는 계획이다. 사실 같은 빌딩을 쓰면서 서로 불편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업계에선 고려아연이 영풍과의 불편한 동거를 끝내려 한다는 말이 뒤따른다. 근본적인 갈등 봉합이 없다면 양측의 분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 뻔하다. 당장의 분리가 어렵다면 물리적 거리를 유지하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결론이 어떻게 나든 이 과정에서 피해 보는 쪽은 고려아연과 영풍의 임직원, 주주들일 것이다. 고 장병희·최기호 창업주는 1949년 "일제치하에서 낙후한 국가경제를 수출산업과 수출진흥으로 재건하자"는 일념으로 영풍그룹을 설립했다. 그런데 양측의 갈등으로 졸지에 임직원은 서로 얼굴을 붉히는 일들이 많아지고 있다. 소모적인 논쟁을 하루빨리 접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드는데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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