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VB 파산 사태, 채권시장 급변…"빅스텝 제동 전망"
채권금리 큰 폭 하락…"금융권 시스템 리스크 확산 주목"
이 기사는 2023년 03월 13일 17시 14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출처 = 실리콘밸리뱅크 홈페이지


[딜사이트 백승룡 기자] 미국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의 자금줄 역할을 해왔던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인상 기조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커졌다. 지난주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의 매파적 발언으로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을 반영하던 시장에서도 연준의 금리인상 보폭이 '베이비스텝'(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으로 축소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해졌다.


이번 사태가 금융 전반의 시스템 리스크로 확산되지 않는 한 채권시장에는 긍정적인 영향이 미칠 전망이 나온다.


◆ 빅스텝에서 베이비스텝으로…뜻밖의 전환점 맞은 채권시장


13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이날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3.435%로 전일 대비 26.8bp(1bp=0.01%포인트) 하락했다. 5년물(3.398%)과 10년물(3.405%), 20년물(3.375%), 30년물(3.344%), 50년물(3.267%) 등도 일제히 하락, 기준금리(3.5%) 수준을 맴돌았다. 국고채 금리가 기준금리를 밑도는 것은 지난달 14일 이후 한 달여 만이다. 회사채 금리도 신용등급 AA- 3년물은 24.7bp 낮아진 4.149%, BBB- 등급의 금리(3년물)도 23.9bp 내린 10.580%를 나타냈다.


미 연준이 최종금리 수준을 높일 것이라는 전망에 지난주까지 상승세를 거듭하던 채권시장 금리가 급락한 것은 SVB 파산 사태로 연준의 금리인상 폭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데 무게가 실리면서다. 강승원 NH투자증권 연구원은 "SVB 파산은 급격한 금리인상의 부작용이 가시화되게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연준도 추후 금리인상에 대해 조심스럽게 접근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금융 시스템 리스크로 확산되지만 않는다면, 채권시장에는 긍정적인 상황이 펼쳐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미 캘리포니아주 금융보호혁신국은 불충분한 유동성과 지급불능을 이유로 지난 10일(현지시간) SVB를 폐쇄했다. 기준금리 인상 여파로 스타트업의 현금흐름이 악화돼 예금인출이 급격하게 늘었고, SVB는 이에 대응해 대부분 미 국채 등 채권으로 보유하고 있던 자산 210억달러(약 27조8000억원)를 매각했다. 그러나 기준금리 인상으로 채권가격이 급락한 상황이다 보니 매각과정에서 18억달러(약 2조3000억원) 규모의 손실을 입었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규모 뱅크런이 발생했다. SVB는 미국 16위 은행으로, 미국 은행 가운데 역대 두 번째로 파산 규모가 컸다.


SVB 파산 사태로 시장 안팎에서는 이달 연준의 빅스텝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고 보고 있다. 추가적인 리스크가 발생하면 미국 금융시스템 전체의 위기로 확산할 수 있어서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금리 선물 투자자들은 이달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워회(FOMC)에서 연준의 빅스텝 가능성을 지난주까지만 해도 80% 이상으로 내다봤지만, 현재는 베이비스텝 가능성이 97%로 높아졌다.


송기종 나이스신용평가 실장도 "이번 SVB 사태는 가파른 금리상승의 부작용이 금융시장에 스트레스 정도를 높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연준 입장에서 향후 정책금리 인상 폭과 속도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금융 시스템의 안정을 고려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달 22일 예정된 FOMC에서는 정책금리 인상 폭이 25bp 수준으로 결정될 가능성은 크게 높아진 것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빅스텝' 우려로 상승세를 나타내던 국고채 금리가 SVB 파산 사태 이후 급락했다.(자료=금융투자협회)

◆ '시스템 리스크' 전이 가능성 예의주시


관건은 이번 SVB 파산이 '리먼브라더스 사태'와 같이 미국 금융 시스템 전반의 문제로 확산하는지 여부다. 아직까지는 SVB 사업구조의 특수성 등을 감안하면 미국 은행의 시스템 리스크로 전이될 가능성은 적다는 게 중론이다. 다만 수면 위에 드러나지 않았을 뿐 유사한 유동성 문제에 봉착한 은행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데다가, 시장 전반의 불안감이 확산돼 있어 다른 은행에서도 뱅크런이 발생해 파장이 커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일단 미국 당국은 신속하게 위기 확산 방지에 나서고 있다. 미 재무부와 연준,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12일(현지시간) 공동 성명을 통해 SVB 고객의 예금을 전액 보증하기로 발표했다. FDIC의 예금자보호 한도는 25만달러(약 3억3000만원) 수준이지만, 이를 넘어서는 예치금까지 보호해 다른 은행에서 발생할 수 있는 뱅크런을 예방한다는 방침이다.


이승헌 한국은행 부총리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은행들의 건전성이 개선돼왔고, 미 재무부·연준·FDIC가 예금자 전면 보호조치를 즉각적으로 시행했다"며 "현재로서는 SVB 폐쇄 등이 은행 등 금융권 전반의 시스템 리스크로 확산할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번 사태가 투자 심리에 미치는 영향과 미국 소비자물가지수 결과 등에 따라서는 글로벌 금융시장 변동성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금융시장은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SVB에 이어 뉴욕 시그니처은행도 지난 12일(현지시간) 폐쇄 조치가 내려졌다. 외신 등에 따르면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중소 은행인 퍼스트 리퍼블릭 은행도 뱅크런에 대한 우려가 높아진 상태다. 퍼스트 리퍼블릭 은행의 주가는 지난 10일 뉴욕증시에서 장 중 한때 50% 이상 급락하기도 했다.


박준우 KB증권 연구원은 "SVB가 겪은 금리 상승에 따른 자산가격 하락과 리파이낸싱 리스크, 그리고 자산의 장부가 평가는 은행만의 문제가 아니다"면서 "재평가로 자산 가치가 하락하면 담보력이 저하되면서 자금조달 리스크는 더욱 커지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사모사채나 사모펀드(PE), 벤처캐피탈(VC) 등이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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