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회초리 내려놔야 가상자산 산업이 산다
금융당국, 매뉴얼만 따졌다간 산업 퇴보 자초
이 기사는 2024년 03월 14일 10시 38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시세 1억원을 돌파한 비트코인 (출처=업비트)


[딜사이트 황지현 기자] 지난 11일 비트코인이 1억원을 돌파했다. 미국발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에서 유입된 기관 매수세가 원인이다. 과거 가상자산 업계에서 이름 날렸던 한국은 더 이상 산업을 주도하지 못하고 있다. 바로 금융당국의 규제 때문이다.


국내 가상자산 산업 규제를 담당하는 기관은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이다. 특정 가상자산 사업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FIU에서 가상자산사업자(VASP) 라이선스를 받아야 한다. 다만 FIU는 까다로운 조건을 내세우며 작년에 단 한 곳만 허락해줬다. 하루가 다르게 산업이 변화하는 업계에서 라이선스에 발목잡혀 사업을 출범하지도 못한 채 사라져간 프로젝트가 허다하다. 그나마 자금 상황이 좋은 프로젝트들은 해외로 떠난다.


국내 가상자산 담당 '일진'인 FIU는 업계에 포지티브 규제를 적용한다. 매뉴얼에 써 있는대로만 사업하라는 뜻이다. 사소한 것 하나하나 허락을 받으라고 한다. '메타'가 나날이 바뀌는 가상자산 시장에는 맞지 않는다. 이런 마당에 FIU가 가상자산 업무에 할당한 인원은 2023년 9명에서 7명으로 줄었다. 매주 수조원 이상 거래량이 발생하는 시장을 이 정도 인원이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취재 협조도 잘되지 않는 기관이 일반 투자자, 사업자 연락은 잘 받을 것이라고는 믿기 어렵다.


신규 사업자뿐 아니라 기존 사업자도 답답하다. 바이낸스와 OKX 등 글로벌 가상자산 거래소들은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서비스를 출시하며 경쟁한다. 자산을 예치하면 유망 프로젝트의 가상자산을 제공하는 런치풀, 새로운 기술이 적용된 월렛(지갑) 등이 매일 쏟아진다. 국내에서는 사실상 진행이 불가능한 사업들이다. 당국이 꽉 막혔으니 기존 서비스에만 목맬 수밖에 없다. 이러니 국내 거래소들은 해외에선 이미 마르고 닳도록 거래된 종목을 상장한다든지, 대형 거래소에서 검증한 종목들을 따라서 상장하는 수밖에 없다. 


한국은 적어도 가상자산 시장에서 이런 나라가 아니었다. 국내 거래소 가상자산에 프리미엄이 발생한 정도를 뜻하는 '김치 프리미엄'은 지금까지도 주요 시장 지표 중 하나로 쓰인다. 미국에서든, 홍콩에서든 김치 프리미엄으로 발음한다. 과거에는 시장을 이끌었다. 2021년 전 세계를 뒤흔든 사기꾼 권도형도 나왔다. 그런데 2024년 한국은 미국 뒤꽁무니만 쫓는 처지가 됐다. 투자자를 보호한답시고 추진한 규제가 오히려 산업을 말려 죽였다.


최근 만난 가상자산 업계의 한 관계자는 "2021년 테라·루나 사태 직후 해외 전화가 쇄도했다. 테라 개발자를 소개해달라는 연락이었다"며 "유능한 개발자들은 다 해외로 떠났다"고 말했다. 전 세계는 비트코인을 자산으로 인정하고 있는데 한국은 거꾸로 간다. 당국이 '허락받고 시키는 대로만 해라' 식 규제를 풀어야 가상자산 나아가 블록체인 산업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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