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희의 아!!이러니]
공정경제 3법과 삼성의 빈자리
이 기사는 2020년 10월 15일 15시 32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김동희 기자]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더니 딱 그 상황입니다. 삼성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니 힘에 부치네요. 이 정도라고는 생각 못했는데..."


국정감사 시즌이다. 코로나 19사태로 잠잠한 느낌이 없진 않지만 해마다 이 시기면 기업에서 눈코뜰새 없이 바쁜 이들이 있다. 올해는 삼성전자 임원이 국회 출입기자증을 부적절하게 사용해 논란을 일으켰던 대관업무(Government Relations, GR) 담당자들이 주인공이다. 소비자나 언론을 상대하는 홍보업무(Public Relations, PR)와 달리 공무원이나 국회의원 등 관(官)의 핵심인물을 만나 각종 정보를 수집하고 기업의 입장을 관철시키는 역할을 맡고 있다. 정부 정책에 따라 경영환경이 좌지우지 되는 기업 입장에서는 누구보다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국정감사 시즌에는 기업 총수의 증인 출석을 자연스럽게 무마시키거나 해당 기업의 이슈를 대변하기 위해 동분서주 한다. 


하지만 올해 대관업무 담당자들의 주요 관심은 아쉽(?)게도 국감이 아니다. 정치적 이슈가 워낙 큰 탓도 있지만 국감보다 더 큰 현안이 기업들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공정경제 3법'이라 불리는 기업규제 법안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대주주의 전횡을 막고 소수주주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의결권 3% 룰'을 포함한 상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기업간 공정경쟁 질서를 만들기 위한 공정거래법 개정과 비지주금융그룹을 감독할 수 있는 금융그룹통합감독법 제정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지난 6월 입법예고한 뒤 규제 심사와 법제처 심사를 거쳐 지난 8월 31일 국회에 상정했다. 여대야소 국면에서 법안처리가 일사천리로 끝날 움직임을 보이자 기업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대표 경제단체인 경영자총협회나 대한상공회의소까지 나서 한 목소리로 반대입장을 내놓고 있다. 


손경식 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지난 6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만나 공정경제 3법이 기업의 경영권 방어를 어렵게 해 생존을 위협한다며 법규제 완화를 호소했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도 지난달 22일 국회에서 여야 대표를 만나 "기업을 옥죄는 법안이 자꾸 늘어나 걱정"이라며 공정경제 3법에 신중을 기해달라는 입장을 밝혔다.     


다행히 여당은 다소 전향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낙연 대표가 의결권 3%룰의 보완 가능성을 밝힌 뒤 더불어민주당은 14일과 15일 이틀간 한국경영자총협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6개 경제단체와 비공개 정책간담회를 갖기로 했다.


결과는 지켜봐야 겠지만 최일선에 뛰고 있는 대관업무 담당자들은 다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자칫 맥없이 무너질 수 있었던 법제화에 브레이크를 걸고, 기업입장을 조금이라도 반영할 수 있는 숨통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정부와 여당의 성향 등을 감안할 때 할만큼 했다는 인식도 퍼져있다. 


다만 아쉬움 섞인 볼멘소리는 감추지 못하고 있다. 재계 전체적인 이슈에 대한 정책 대응이 이번처럼 체계적이지 못했던 적도 드물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다. 개별 기업이 아닌 전체 기업에 해당하는 법인 만큼 한 목소리를 담아 기업 입장을 선제적으로 알리고 정부와 여당을 설득할 논리를 개발해야 했지만 누구하나 나서서 총대를 메지 않은 영향이 컸다. 대응 시기도 너무 늦었다는 평가다. 


삼성의 빈자리가 너무 크다는 한탄이 나오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다. 그 동안 삼성은 재계 1위 맏형답게 암묵적으로 기업 입장을 대변하는 역할을 맡아왔다. LG, 현대차 등 다른 대기업집단이 운영하는 대관업무 조직보다 인력이 많은데다 전문성도 갖추고 있어 경쟁사 대관담당자까지도 삼성을 신경쓰고 의존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하지만 국정농단 사건이후 삼성은 재계 대변자 역할에서 한 발 물러난 모습이다. 미래전략실을 해체하면서 공식적으로는 대관업무를 폐지했다. 가외업무로 대관을 담당하고 있는 임직원들도 이재용 부회장을 둘러싼 소송이나 회사와 직접적인 관련있는 정부 정책에만 대응하고 있다. 기자증을 도용해 국회에 출입했던 삼성전자 임원 역시 중소기업 기술탈취에 대응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대관업무를 삐딱하게 보는 시선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불법 로비스트라거나 정경유착을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기 일쑤다. 회사에 대한 그릇된 충성심에 때로는 불법과 합법의 경계선을 오가다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순기능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특히 로비스트를 허용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는 기업이 정부나 공무원, 국회 등과 소통하는 유일한 창구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정부 여당과 기업이 치열하게 대치하는 공정경제 3법에 삼성의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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