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전력 소모 해결책 '핵융합'
미국 빅테크 핵융합 스타트업에 수조원 투자…정부·삼성·LG·SK 등 나서 상용화 앞당겨야
이 기사는 2024년 04월 12일 17시 38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은 22일 언론 간담회를 개최해 한국형핵융합연구로의 모습을 공개했다. 사진은 한국형핵융합연구로(KSTAR)의 바깥 모습. (제공=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딜사이트 김민기 기자] 최근 인공지능(AI) 기반 데이터 센터들이 전력 소비량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리면서 미국 빅테크들도 미래 에너지원으로 각광받는 핵융합 분야에 거금을 쏟아 붓고 있다. 우리나라는 '인공 태양'으로 불리는 핵융합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가지고 있지만 아직 정부와 민간에서 대대적인 투자에 나서지 않고 있어, 미국이나 중국에게 따라잡힐 위기에 놓여있다. 세계 주요국들에서 핵융합 스타트업들이 대거 생겨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도 핵융합 발전로 상용화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정부와 대기업이 나서 시장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업계에 따르면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의 '한국형초전도핵융합연구장치(KSTAR)'가 최근 '초고온 플라스마 유지 시간'으로 세계 최장 기록인 48초를 갱신했다. KSTAR는 그간 핵융합 플라즈마 장시간 운전 기술 분야에서 선도적인 연구 성과를 달성해 왔다. 2018년 최초로 이온온도 1억도 플라즈마 달성 이후 2021년 1억도 플라즈마를 30초 유지하며 세계 기록을 달성한 바 있다. KSTAR의 최종 목표는 2026년까지 1억도 초고온 플라즈마 운전 300초를 달성하는 것이다.


핵융합 발전은 수소나 헬륨처럼 원자핵이 가벼운 원자끼리 부딪혀 무거운 원자로 바뀌는 과정에서 방출되는 에너지로 전기를 만든다. 태양에서 수소와 수소가 핵융합해 헬륨이 되는 반응을 지상에서 인위적으로 일으키는 방식으로 '인공태양'이라 불린다. 인공태양을 만들려면 1억도 이상의 고온, 고밀도 환경에서 플라즈마를 유지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핵융합 발전이 이르면 2030년대에 실현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최근 빌 게이츠와 제프 베이조스 등이 핵융합 발전에 거액을 투자하기 시작하면서 상용화 시점이 빨라지고 있다. 정부나 국제기구에서 추진했던 핵융합 발전에 민간 업체가 뛰어들면서 투자 열기도 뜨거워지고 있다. 세계적으로 43개의 핵융합 스타트업이 출발했고 지난해 이후 13개 기업이 이름을 올리며 핵융합 스타트업 창업이 활성화되는 추세다.


지난해 5월 미국 스타트업 헬리온에너지는 2028년부터 핵융합으로 생산한 전기 50메가와트(MW)를 매년 마이크로소프트(MS)에 공급하기로 계약했다. 챗GPT를 개발한 오픈AI의 최고경영자인 샘 올트먼도 최근 헬리온 에너지에 5000억원 이상 투자했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도 캐나다 스타트업 제너럴 퓨전에 투자했다. 이 회사는 2025년부터 영국 옥스퍼드셔 컬햄에 완공한 핵융합 실증 시설로 전기를 생산할 계획이다. 미국 메사추세츠공대(MIT) 플라즈마 과학융합센터에서 인큐베이팅한 벤처기업 커먼웰스퓨전시스템(CFS)은 2022년 빌 게이츠 MS 창업자 등으로부터 18억달러(약 2조원)를 투자 받았다.


국내에서는 KSTAR 개발을 주도하고 국제핵융합실험로(ITER)의 2인자(사무차장)를 지낸 핵융합 석학 이경수 박사가 핵융합발전 스타트업 '인애이블퓨전'(Enable Fusion) 창업했다. 초기 자본금은 250억원 규모며 고려제강이 약 60억원으로 20%의 지분을 투자했다. 인애이블퓨전은 KSTAR에 참여했거나 ITER에 납품한 경험이 있는 기업들의 제조 능력에 4차 산업혁명 기술을 더하는 핵융합발전 관련 '토털 솔루션 공급자'로서 역할을 할 계획이다. 핵융합로를 만드는 세계 주요 핵융합 스타트업과 정부 주도 프로젝트가 수요처다.


이외에 국내에서 ITER와 KSTR의 주요 부품을 제작하고 공급한 업체는 고려제강의 자회사인 KAT, 현대중공업, 이엠코리아, 비츠로테크, SFA, 삼홍기계, 일진파워, 다원시스 등이 있다. KAT는 플라즈마 밀폐 및 평형 유지를 위한 핵심 구성품인 TF 초전도 도체를 생산하고 공급한다. 현대중공업은 플라즈마 생성 및 유지에 필요한 초고진공 환경 제공 및 블랑켓, 디버터 구조물을 지지할 수 있는 진공용기 본체를 제작했다. 다원시스는 국내 핵융합로 뿐만 아니라 프랑스에 소재하는 국제 핵융합로의 가동과 제어를 위한 핵심 장치인, 핵융합 전원 장치를 개발해 공급하고 있다. 핵융합 전원 장치의 비중은 전체 설비비의 약 15%에 달할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전문가들은 핵융합 발전 사업도 국가가 주도한 것에서 민간 기업 주도로 전환되기 시작해, 급속도로 빠르게 핵융합 발전 시대가 다가올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도 경쟁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정부나 대기업들의 적극적인 투자와 관심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국내에서 2050년쯤 핵융합 발전이 상용화될 것으로 보고 있지만 해외나 미국에서는 여러 스타트업들이 수십조원이나 되는 비용을 투자받으면서 핵융합 발전 상용 시기를 20~30년씩 앞당기고 있다. 자칫 잘못하다간 핵융합 주도권을 다른 국가에 뺏길 수 있는 상황이다. 


실제 중국 정부는 최근 들어 본격적인 핵융합 기술 고도화에 나섰다. 중국국가원자력공사(CNNC) 및 25개 기관·기업이 모인 '중국핵융합에너지' 컨소시엄과 내셔널챔피언(국가대표기업) '중국핵융합'을 만들어 민관 역량을 결집할 방침이다. 중국은 여섯 번째 핵융합 실험 장치 구축에만 200억 위안(3조 7000억 원)을 투입한다. 하지만 한국은 KSTAR 건설에 4000억원을 투입했고 올해 핵융합연구소 예산으로 2149억원만 배분됐다.


업계에서는 반도체 업계가 전세계적으로 거세게 부는 '탄소중립' 이슈에 놓인 만큼 넷제로(Net Zero) 반도체를 만들기 위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이 정부와 손을 잡고 핵융합 투자에 나서야한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MS도 2020년에 탄소 중립 전략을 발표하면서 2025년까지 전력 공급을 100%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고, 2030년까지 탄소를 제거한다는 계획이다. MS의 핵융합 투자는 탄소 무배출 전력망을 위한 것이다.


실제 이경수 박사(현 인애이블퓨전 대표)는 KSTAR 총괄 책임자 시절 핵융합 연구에 대한 투자를 요청하기 위해 삼성, 현대, 대우 등 그룹 총수들과 만났다. 고(故) 정세영 현대그룹 회장은 직접 연구소를 찾아 투자를 약속했고, 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은 국가가 필요할 때 기업이 나서서 도와줘야 한다는 신념으로 투자를 결정하기도 했다. 최근 이재용 삼성 회장이 새로운 미래 먹거리를 찾고 있는 만큼 핵융합이 삼성의 미래를 이끌 새로운 사업이 될 가능성도 있다.


오영국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공학연구본부장은 "한국도 전세계 핵융합 분야에서 주도권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정부, 민간이 힘을 합쳐 투자를 늘리고 상용화를 앞당겨야 한다"며 "앞으로 3년 동안 정부와 함께 토대를 마련하지 않으면 핵융합 분야에서 기회를 놓칠 수 있을 것이라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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