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정로에서]
안전한 금융상품은 없다
반복되는 금융상품 잔혹사…투자의 책임은 결국 '나 자신'
이 기사는 2023년 12월 22일 08시 43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사진=Pexels)


[딜사이트 이성희 차장] 지난 2000년 중반 중국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중국에 투자하는 펀드가 큰 인기를 끌었다. 2007년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14.2%에 달했다. 


2007년~2008년 중국펀드에 몰린 돈만 48조원~50조원에 달하며 '열풍'을 넘어 '과열' 양상까지 보였다. 당시 투자자들은 모두 중국 경제가 끝 없이 성장할 것으로 믿었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사태에 투자금이 반토막나는 슬픈 결말을 맞았다.


3~4년 뒤 2011년~2012년에는 브라질 국채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당시 국내 투자자들이 사들인 브라질 국채 규모만 10조원이 넘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또한 브라질 화폐인 헤알화 가치 폭락으로 투자자들에게 큰 손실을 안겨줬다. 


2010년대 중반에는 ELS라는 상품이 나오기 시작했다. 당시 국내 증시는 코스피가 1900~2000선에 장기간 갇혀있던 시기다. 박스권에 갇힌 증시라는 의미의 '박스피'와 '박스닥'이란 단어가 2015년 국립국어원이 발표한 2014년 신조어로 선정될 정도였다.


때문에 "기초자산의 종가가 투자 기간 중 최초 기준가격의 50~60% 미만으로 하락하지 않는다면 만기에 5%~10%에 해당하는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ELS는 대안 투자 상품으로 각광을 받았다.


각 금융사들도 ELS 상품 판매에 열을 올렸고, 당시 한 증권사는 유명인들을 내세워 ELS에 대한 TV 광고를 내보낼 정도였다. 하지만 이 마저도 굴지의 기업들을 기초자산으로 삼은 종목형 ELS가 원금손실구간(Knock-in)에 빠지면서 투자자들을 충격에 빠트렸다. 


종목형 ELS의 원금손실 우려가 불거지자 더 안전하다는 지수형 ELS로 투자 열기가 전이됐다. 코스피200, S&P500, 유로스탁스(EuroStoxx)50, 니케이(Nikkei)225, 홍콩H지수 등을 기초자산으로 삼은 상품이다. 홍콩H지수가 두어번 원금손실구간을 터치하긴 했지만 꽤 오랜 기간 지수형ELS는 문제없이 상환이 이뤄졌다.


하지만 결국 지수형 ELS도 홍콩H지수의 폭락에 내년 상반기 만기가 도래하는 ELS들이 대거 손실을 예고하고 있다. 만기 때까지 홍콩H지수가 8000포인트 이상으로 올라서면 손실을 면할 수 있다곤 하지만, 전문가들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로 보고 있다.


시간을 되돌려보면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금융상품일 수록 손실이 났을 경우 투자자의 피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다. 위에서 언급한 사례 외에도 2008년 '키코사태'가 그렇고 2019년 DLF 사태도 마찬가지다. 그 누구도 2007년까지 900원에 머물던 원달러 환율이 2008년 1500원까지 치솟을 줄 몰랐고, 어떤 이도 독일 채권금리가 -0.3%보다 더 떨어져 -0.6%를 넘어설 지 짐작하지 못 했다. 이번 ELS 사태 역시 어느 누가 홍콩H지수가 반토막이 날 것이라 예상이나 했겠는가. 


내년 홍콩H지수 관련 ELS들의 대규모 손실 예상으로 인해 금융권이 시끄럽다. 내년 상반기 만기가 도래하는 규모만 8조3000억원에 달한다. 그 과정에서 불완전판매가 있을 수도 있다. 금융당국도 이에 대해 면밀히 들여다 보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필자도 피 같은 돈을 투자 과정에서 잃어 본 경험을 가진 일이 있기에 손실의 아픔을 알고 있다. 하지만 결국 내가 결정한 투자이기에 아픔도 홀로 감당해야 했다.


금융범죄 예방과 피해자 구제를 위한 투자자 보호 제도가 있긴 하지만, 투자의 모든 책임은 투자 정보를 수집하고 해석해 최종 결정을 내린 본인에게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명심해야 한다. 금융사로부터 투자 정보나 투자 권유를 받을 수 있지만, 설사 금융사의 도움을 받아 투자하는 간접 투자라도 선택에 대한 책임은 결국 자신에게 있다. 


20여년 동안 금융상품 잔혹사가 되풀이 되고 있다. 역사학자 E.H.카는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과거와 같은 금융상품 잔혹사는 현재에도 미래에도 언제든 또 발생할 수 있다. 투자 전 자세한 공부와 조사가 필요하다. 내 돈을 지킬 수 있는 건 나 자신 밖에 없기 때문이다. 세상에 '안전한' 투자 상품은 없다. 

ⓒ새로운 눈으로 시장을 바라봅니다. 딜사이트 무단전재 배포금지

관련기사
충정로에서 18건의 기사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