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신용평가사를 위한 변명
자본시장 내 워치독 역할, 직무유기 논란…투자자 반발 등 현실적 어려움도
이 기사는 2024년 01월 22일 08시 40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출처=각 사 홈페이지)


[안경주 금융증권부장] "신용평가사들은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을 신청한지 불과 4시간 사이에 신용등급을 기존 'A-'급에서 투기등급인 'CCC'급으로 낮췄습니다. 자본시장의 워치독(Watch Dog·감시견)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태영건설의 신용등급을 선제적으로 'BB+'급이나 그에 준하는 'BBB'급 등 투기등급으로 하향했어야 했다."


2024년 새해를 불과 사흘 앞두고 국내 자본시장을 강타한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소식이 전해진 후에 국내 3대 신평사(한국기업평가, 한국신용평가, 나이스신용평가)가 일제히 태영건설 등급을 낮추자 터진 불만의 목소리다.


끊임없이 부도설에 휩싸였던 태영건설의 기습적인 움직임에 손실을 본 투자자들은 화풀이 대상을 찾던 중 신평사로 눈을 돌렸고, 결국 '뒷북' 평가 논란까지 이어진 것이다.


'뒷북' 평가는 타당한 지적이다. 신평사는 재무정보를 토대로 기업들의 신용도를 분석, 시장 참여자에게 해당 기업의 신용등급을 제공한다. 개별 기업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투자자 입장에서는 신평사가 제공하는 정보를 높은 수준에서 신뢰하고, 이를 기반으로 투자에 나설 수밖에 없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높은 신뢰 수준의 정보를 제공받지 못했다고 판단한 투자자 입장에서는 당연한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그간 자본시장에서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신청 가능성이 수차례 제기됐다는 점에서 신평사의 직무유기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운 이유다.


그렇다고 새로운 논란거리라고 할 수 없다. 가깝게는 몇 개월 전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한 대유위니아그룹 계열사 신용등급 하향 조정을 두고도 한차례 불거졌다. 멀게는 10여년 전 동양그룹, STX그룹 해체 과정에서도 논란이 있었다.


눈길을 끄는 건 신평사 역시 최근의 상황에 대해 무척이나 답답해한다는 점이다. 전해 듣기로는 변명 아닌 변명을 하고자 해도 이를 얘기할 상대도 없고, 들어주지도 않는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자본시장 내에서 신평사를 대변해 주는 목소리를 거의 듣지 못하기도 했다. 


우선 신평사가 태영건설의 신용등급을 급하게 낮췄다면 오히려 시장에 혼란만 초래했던 것은 아닐까 한다. 일례로 신용등급 하향조정까지는 아니지만 2022년 11월 한신평이 발표한 '미분양 리스크' 관련 보고서로 인해 태영건설 등 당시 언급된 건설사들은 부도설까지 돌면서 곤욕을 치렀다.


또 도급순위 16위인 태영건설의 신용등급을 하향시키면서 그보다 순위가 낮은 건설사의 신용등급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했을지도 의문이다. 태영건설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으로 우발채무가 많았다고 하지만 우량자산 규모나 재무 상태를 봤을 때 도급순위 16위 이하의 건설사 보다 나쁘다고 볼 수만 없어서다. 그렇다면 선제적으로 태영건설 등급을 조정했다면 건설사에 대한 투자심리만 더 빠르게 악화되지 않았을까.


2016년 채권단 자율협약에 따라 구조조정이 한창이던 한진해운을 상대로 한국신용평가가 선제적으로 등급을 하향 조정하면서 오히려 해운산업 구조조정에 악영향을 끼쳤다는 얘기도 절대 흘려들을 수 없다.


이런 생각도 해본다. 태영건설이야 결과적으로 워크아웃을 신청했지만, 최근 위기설이 제기되고 있는 일부 건설사의 신용등급을 미리 하향 조정(일부는 작년 말에 하향 조정했지만 추가로 조정한다는 전제)한다면, 그래서 주가나 회사채 가격이 급격히 하락해 투자자들이 손실을 입었다면 과연 가만히 있을까.


너무 가정법을 쓴 것 아니냐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상황은 약간 다르지만 작년에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가 에코프로에 대한 목표주가 하향 및 매도 보고서를 냈다고 해코지를 당했던 점을 상기해 봐야 한다.


실제로 작년 11월 서울 여의도동 IFC몰 앞에서 보고서를 쓴 애널리스트와 한 카페 회원들 사이에 물리적인 출동이 발생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강성 주주들이 애널리스트가 공매도 세력과 결탁했다고 금융당국에 신고, 조사를 받기도 했다.


그러면 앞으로 국내 신평사는 선제적으로 뚝심있게 신용등급을 부여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태영건설 워크아웃으로 또다시 곤욕을 치르고 있는 신평사에 대한 변명인 동시에 우려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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