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정로에서]
식품업계 외도…승부수인가 자충수인가
'바이오' 미래먹거리 낙점 잇따라…치밀한 전략·긴 호흡 필요
이 기사는 2024년 02월 02일 09시 48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오리온 본사 전경. (제공=오리온)


[딜사이트 유범종 차장] 새해 벽두부터 국내 식품업계를 깜짝 놀라게 한 딜(Deal) 소식이 들려왔다. 국내 대표 제과기업인 오리온이 글로벌 바이오시장에서 한창 주목받고 있는 기업인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레고켐바이오)를 5500억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품에 안은 일이다.


오리온은 현금유동성이 풍부한 해외계열사 팬오리온코퍼레이션을 내세워 레고켐바이오 지분 25.73%를 인수하며 단번에 최대주주에 올랐다. 레고켐바이오는 차세대 항암제로 불리는 항체·약물 접합체(ADC) 기술력을 입증하며 이름을 떨치고 있는 기업이다. 오리온은 이번 인수를 통해 식품기업에서 벗어나 글로벌 신약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번 딜은 식품과 바이오라는 이종산업 간 결합이라는 점에서 더욱 이목을 끌고 있다. 최근 국내 식품기업들이 앞다퉈 바이오 투자에 나서면서 양 사업간 경계는 자연스럽게 허물어지고 있는 추세다. 앞서 2021년 또 다른 식품기업인 CJ그룹이 바이오기업 천랩을 인수해 CJ바이오사이언스를 설립한 것이나 대상그룹이 작년 항진균제 신약개발기업인 앰틱스바이오에 투자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국내 굵직한 식품기업들이 이처럼 이종산업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건 크게 두 가지 이유로 압축될 법하다. 먼저 기존 전통적인 식품산업이 시장구조적인 성장 한계에 직면했다는 점이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로 지목될 수 있다. 


기업은 지속성장을 위한 장작이 반드시 필요한데 전통적인 식품사업의 경우 출산율 하락 등에 따른 인구 감소 여파로 점차 성장동력을 잃어가고 있다. 나아가 불확실한 글로벌 경제로 원료가격은 계속해서 오르는데 제품가격에는 이를 온전히 전가시키기 어렵다 보니 실질적인 이익률은 바닥에서 헤어 나오질 못하고 있다. 결국 식품기업을 이끌어가는 경영자들은 성장을 위해 자연스럽게 새로운 사업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여건으로 내몰리고 있다. 


그 중에서도 바이오산업이 부각이 되고 있는 건 새로운 영역에 대한 도전과 함께 일부 시너지까지 도모할 수 있어서다. 실제 CJ나 대상의 경우 식품기업으로서 발효연구 등에 강점이 있는 만큼 이를 바이오사업에 접목해 기업을 성장시키는데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우려의 시선 역시 적지 않다. 특히 이종산업 간 결합에서 서로 다른 투자방식과 사업구조를 어떻게 맞춰나갈 수 있을지 관건이 될 전망이다. 국내 식품기업의 경우 통상 전체 매출 가운데 연구개발(R&D)에 투입하는 비용은 1%가 채 되지 않는다. 반면 바이오는 성과를 내기까지 장기간 막대한 연구개발 투자가 필요한 사업이다. 또한 투자를 한다 해도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


과거 바이오에 도전했다 철수한 국내 기업의 사례가 적지 않은 것이 이를 방증한다. 롯데그룹의 경우 2002년 아이와이프엔에프를 인수하며 롯데제약을 출범했지만 2011년 건강기능식품만 남기고는 사업에서 철수했다. 당시 업계에선 롯데가 의약품시장의 높은 규제 허들을 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한화그룹도 바이오사업 진출을 선언한 이후 2004년 에이치팜, 2006년 한국메디텍제약을 인수하며 신약개발에 과감히 도전했지만 결과적으로 10년 만에 사업을 접었다. 아모레퍼시픽 역시 2013년 태평양제약을 인수했다가 한독에 다시 넘기며 쓴맛을 봤다.


오리온의 주가가 레고켐바이오 인수 발표 직후 곧바로 21%나 폭락한 것도 이러한 투자자들의 불안감이 선제적으로 반영된 측면이 크다. 식품기업이 바이오사업에서 성공하려면 막연한 시너지만 기대해선 안 된다. 오히려 높아진 위험부담을 낮추면서 전략적으로 사업을 이끌어갈 구체적이고 치밀한 방안이 선제적으로 마련돼야만 한다. 그리고 긴 호흡을 가지고 기다릴 수 있는 인내심은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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