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이재용 리더십 시험대 된 HBM
SK하이닉스에 1위 내줘···선대 회장과 비교되는 'HBM 팀 해체' 결정
이 기사는 2023년 09월 07일 08시 25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이재용(왼쪽에서 두번째) 삼성 회장이 삼성 반도체 생산 공정을 점검하고 있다. (출처=삼성전자 뉴스룸)


[딜사이트 김가영 기자] 1995년 3월 삼성전자 구미공장 앞에서는 '애니콜 화형식'이 벌어졌다. 휴대폰 불량률이 12%에 이르자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이 "시중에 나간 제품을 모조리 회수해 공장 사람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태워 없애라"고 지시했다. 세계 1등이 되겠다는 이 회장의 목표 아래 15만대(500억원 상당)의 휴대폰이 2000여명의 삼성전자 직원들 눈앞에서 불태워졌다.


이 전 회장의 결단력과 승부욕을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후 수십 년간 휴대폰 시장에서 삼성전자는 굳건한 1위를 지켜왔고, 지금도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삼성전자의 갤럭시 시리즈 출하량 기준 1위다.


아쉽게도 최근 반도체 분야에서 가장 높은 관심을 끌고 있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는 삼성전자가 SK하이닉스에게 1위를 빼앗겼다. 지난해 말 오픈AI가 챗GPT를 출시한 후 너도나도 생성형AI를 개발하면서 HBM수요가 급증했다. 지난해 HBM 시장 점유율은 SK하이닉스가 50%, 삼성전자가 40%로 10%가량 차이가 나는 상황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D램 점유율 격차 자제가 좁혀졌다. 지난 2분기 기준 전 세계 D램 시장 점유율 2위인 SK하이닉스는 1위인 삼성전자와의 격차를 불과 6%포인트까지 줄였다.


이처럼 삼성전자가 HBM 분야에서 뒤처진 이유는 일찍이 HBM 팀을 해체시켰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HBM연구 개발을 지속해오다가 예상보다 수요가 없고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자 2019년 팀을 해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건희 회장이 별세하기 1년 전이며, 이재용 회장이 부회장으로서 실질적으로 삼성을 이끌던 시기다.


이와 같은 결정을 두고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반도체 시장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섣부르게 HBM팀을 해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HBM이 이처럼 갑작스럽게 각광을 받게 될 줄은 예상하기 어려웠을 테지만, 메모리 반도체 전세계 1위인 삼성전자가 시장의 흐름을 놓쳤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또한, 당장 수익이 나지 않는다고 해도 '선대 회장이었다면 과연 팀을 해체했을까?'라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 삼성전자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는 안일한 판단이었던 셈이다. 


반면 SK하이닉스는 끊임없이 연구개발에 매진하며 최근에는 초고성능 D램 신제품 HBM3E 개발에 성공했다. 업계는 삼성전자가 SK하이닉스와의 기술 격차를 따라잡으려면 1년 반 정도의 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AI기술과 반도체 성능 검증 기간 등을 고려하면 1년 반은 생각보다 긴 시간이다. 


HBM은 이재용 회장의 역량과 리더십을 판별할 수 있는 시험대가 됐다. 특히 현재와 같은 위기 상황에서는 대응하는 방식에 따라 선대 회장들과 비교될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는 SK하이닉스와 달리 파운드리 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반도체 패키징으로 차별화하며 점유율을 높여보겠다는 입장이다. 이 회장은 과연 선대 회장의 그림자를 지울 수 있는 현명한 전략을 내세우고 다시 선두업체이자 혁신의 아이콘이 될 수 있을까. 수익성에 매몰되기보다는 이 전 회장의 '애니콜 화형식'과 같은 결의와 혁신을 보여주며 '1위 기업'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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