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보험은 억울하다
보험은 안전장치…다른 금융상품과 다른 특수성 다시 생각해봐야
이 기사는 2024년 02월 13일 08시 21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출처=Pixabay)


[딜사이트 차화영 기자] "말 그대로 '보험'인데 해지할 때 원금을 다 돌려받지 못하면 손해라고 여긴다."


벌써 수달째 생명보험업계를 들썩이고 있는 '단기납 종신보험 논란' 관련 취재를 하다가 보험사 관계자에게 들은 말이다. 이 관계자는 최근 논란이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보험도 결국 상품이라 소비자가 원하는 방향대로 진화할 수밖에 없는데 보험에 대한 이런 생각도 지금의 논란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얘기다.


단기납 종신보험은 20~30년에 이르는 기존 종신보험의 만기를 10년 이내로 축소한 상품으로 2021년 KB생명이 처음 선보였다. 월 보험료가 상대적으로 비싸지만 해지환급금이 낸 보험료의 100%를 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짧다. 보험인데도 원금보다 더 많은 돈을 돌려받을 수도 있다는 점은 소비자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갔고 단기납 종신보험은 생명보험사의 효자 상품이 됐다.


문제는 이런 특징을 가진 단기납 종신보험도 저축성 보험이 아니라 피보험자의 사망 때 수익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하는 게 본래 목적인 보장성 보험이라는 점이다. 보장성 보험은 사망이나 재해, 각종 사고 등이 일어날 때를 대비하는 게 가장 큰 목적으로 중도 해지하면 원금을 보장받을 수 없다. 금융당국이 단기납 종신보험을 저축성 보험처럼 판매하는 최근의 관행을 '불완전 판매'라며 문제 삼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론 단기납 종신보험은 보험사에도, 소비자에도 이득이 되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 보장성 보험이라 새 국제회계제도(IFRS17) 아래에서 많이 팔수록 보험사 실적에 긍정적이다. 소비자로서는 보장성 보험의 장점과 저축성 보험의 장점을 모두 누릴 수 있다. 하지만 단기납 종신보험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는 점을 떠올리면 소비자도, 보험사도 보험의 본래 의미와 보험상품만의 특수성을 다시 한번 생각할 필요가 있다.


'손해를 물어 준다거나 일이 확실하게 이뤄진다는 보증', '재해나 각종 사고 따위가 일어날 경우의 경제적 손해에 대비하여 공통된 사고의 위협을 피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미리 일정한 돈을 함께 적립해 뒀다가 사고를 당한 사람에게 일정 금액을 주어 손해를 보상하는 제도'. 국립국어원이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정의하고 있는 보험의 의미다. 뜻을 종합하면 보험은 결국 일상 속 예상치 못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안전장치다.


보험은 저축성 보험도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은행 예·적금이나 증권사 펀드 같은 금융상품과 크게 다르다. 일단 가장 큰 목적이 돈을 불리는 데 있지 않다. 중도 해지하면 원금은 보장되지 않는다. 은행 예·적금은 간단한 서명과 동의 절차로 은행에 넣었던 돈을 다시 손에 넣을 수 있지만 보험금은 수령 조건을 충족해도 지급되기까지 절차가 까다롭다.


올해 초에 차 사고가 났다. 나도 상대방 운전자도 크게 다치지 않은 작은 사고였어도 내 쪽 과실이 더 커서 걱정이 많았는데 보험 덕분에 당장 금전적 부담은 없었다. 물론 보험료는 오르겠지만 보험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느꼈다. 동생은 지난해 예상치 못하게 수술을 받았는데 실손보험과 상해보험 덕분에 따로 돈 드는 일 없이 치료를 마쳤다. 사고도 수술도 없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보험의 존재 이유를 몸소 깨달은 경험이었다.


하지만 안다. 모두가 이런 경험을 하지는 않는다는 걸. 그래서 보험에 가입할 때 원금 생각을 안 할 수 없다는 것도. 최근에 보험사 상품을 중개 판매하는 중소기업 대표님과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수십 년 업계에 있으면서 '이 보험은 꼭 들어야 한다'고 느낀 상품이 있는지 물었다. 친절한 설명과 함께 세 가지 상품을 추천했다. 필요성이 크게 와 닿지 않은 나는 보험료는 버리는 돈 같아 대신 주식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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