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유명 곱창집과 테마주
'꿈의 신소재', '파평윤씨 테마주'…비이성적 투기 사라지길
이 기사는 2024년 03월 13일 08시 46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한국거래소 구 황소상. 상승장(황소)이 하락장(곰)을 밀어내는 모습으로 주식시장 활성화를 기원하는 의미가 담겼다. (제공=한국거래소)


[딜사이트 박기영 기자] 최근 서초동에 있는 유명 소 곱창집을 갔다. 업력이 20년을 넘은 곳이다. 벽에는 유명인들의 사인이 걸려있고 늦은 시간에도 소주를 한잔 하러 온 이들로 북적였다. 가득찬 곱이 입안에 고소함을 가득 채워줄 것이라 기대하며 곱창을 주문했다. 어느 곱창집처럼 초벌이구된 철판이 나왔을 때, 잔뜩 차오른 기대감은 차디찬 실망으로 변했다.


철판 가장자리에 가지런히 놓여진 곱창은 품고 있던 곱을 절반 이상 철판에 쏟아낸 상태였다. 속이 텅빈 곱창은 이 소가 생전에 무척이나 건강하고 튼튼했음을 짐작하게 하는 질긴 식감만 강조됐다. 흘러나온 곱의 양이 적지 않은 것을 보니 재료는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결과물은 끔찍했다. 멍한 눈으로 벽에 걸린 유명인 사인을 바라보며 저들은 곱창을 먹고 나서 해줬을까, 아니면 먹기 전에 했을까 궁금해졌다.


문득 주식시장에서도 이런 종목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업종 전망도 밝고 시장의 주목도 받는데, 정작 실적은 나쁜 기업들이다. 회사 관계자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장미빛 미래로 가득한 사업인데, 사업보고서 숫자들은 창백하다. 간접비용인 판관비가 매출원가를 넘어서는 이상한 기업도 있고, 원재료값 이슈도 없는데 매출원가가 매출을 훌쩍 넘어 사업구조가 망가진 회사도 있다. 어떤 기업은 채권자의 전환사채(CB) 조기상환청구권(풋옵션)을 감당하지 못해 부도 위기를 겪기도 한다.


마치 재료는 좋은데 곱을 다 흘러나오게 대충 구운 소 곱창같다. 특히 이런 특징은 시장의 주목을 많이 받은 테마업종에서 두드러진다. 최근 몇몇 종목은 초전도체 테마를 타고 폭등했다. 초전도체는 진위 여부를 떠나 상용화에만 10년은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신소재다. 현재 초전도체 관련 종목을 매수하는 이들 중 10년 뒤를 내다보고 투자하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수년전 '꿈의 신소재'라며 주목받았던 그래핀 테마주가 떠올랐다. 당시도 '꿈의 신소재'라고 불리는 그래핀을 개발하겠다는 기업은 많았지만 아직까지 눈에 띄는 성과는 없다.


같은 맥락에서 기자 생활을 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테마주는 수년 전 대선을 앞두고 유행했던 '파평윤씨' 테마주다. 윤석열 대통령(당시 후보)이 파평윤씨기 때문에 같은 파평윤씨가 운영하는 회사가 잘 될 것이란 '창의적인 발상'이다. 다음달 10일 총선을 앞두고 또 다시 정치 테마주가 기승을 부릴 조짐도 보인다.


문제는 이에 동조하는 투자자가 많다는 점이다. 유명세를 믿고 아무런 의심없이 곱창집을 방문하는 심리와 비슷하다. '유명한 이유가 있겠지', '실제로 손님이 많잖아', '유명인들도 먹었다네' 등의 이유들은 곱창 맛을 보장하지 않는다. 투자도 같다. 대표 성씨가 무엇이든, 어느 정치인과 친하든 기업가치와는 무관하다. 정상적인 정치인이라면 오해를 받기 싫어서라도 지인에게 특혜를 주지 않는다. '꿈의 신소재' 역시 아직 상용화까지 상당한 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추상적인 '꿈'이란 수식어가 붙는 것이다. 그럼에도 단순히 주가 변동성이 높다는 이유로 소위 '묻지마 투자'에 나서는 경우가 적지 않다.


주식은 말 그대로 기업의 소유권을 뜻한다. 기업 소유권의 가치, 즉 주가는 기업가치에 비례한다. 주식시장 특성상 기대감이 선반영되는 것은 당연하지만 기업가치 변동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막연한 '묻지마 투자'는 사실상 투기다. 투자를 투기로 만드는데 동조하는 이들이 많을 수록 시장은 왜곡될 수 밖에 없다. 이성적인 투자자가 늘어날 수록 시장 역시 이성적인 모양새를 갖춰간다.


언젠가는 '파평윤씨 테마주'나 '꿈의 신소재' 같은 창발적 이야기가 주가 부양 이유가 아닌 술자리 농담에 그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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