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롯데건설을 감싸는 '보이지 않는 손'
'둔촌주공 살리기' 이어 이례적인 4대 시중은행 참여 펀드…회자되는 '대마불사'
이 기사는 2024년 03월 06일 08시 29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 공사 현장.(제공=시공사업단)


[딜사이트 백승룡 기자] "4대 시중은행이 한 곳도 빠짐없이 참여한 데다가 산업은행까지 가세했는데, 정부 차원의 조율이 없었을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지난달 롯데건설의 2조3000억원 규모 프로젝트파이낸싱(PF) 펀드 조성에 대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들의 공통적인 반응이었다. 앞서 레고랜드 사태 이후 유동성 위기에 빠졌던 롯데건설은 지난해 초 메리츠금융그룹과 1조5000억원 규모의 공동 펀드를 조성했었다. 금리는 연 12% 수준. 시공능력평가 10위권 건설사의 대출 금리로는 가히 굴욕적인 조건이었다. 이달 만기도래를 앞두고 롯데건설이 연초부터 분주하게 '2차 펀드' 조성에 나선 배경이다.


시장 안팎에서 흥미롭게 바라본 대목은 펀드 참여기관 리스트다. 롯데건설이 연초부터 은행권과 펀드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 복수의 은행이 참여할 것이라는 점은 공공연하게 인지된 터였다. 그러나 KB국민은행, 신한은행, 하나은행, 우리은행 등 4대 시중은행과 더불어 산업은행까지 일제히 참여하는 구성은 대다수 시장 관계자들에게도 예상 밖이었다는 분위기다. 제2금융권에서 추구할 만한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상품을 은행에서, 그것도 4대 시중은행 전부가 투자했다는 점이 이례적이기 때문이다.


이는 태영건설이 지난해 말 성수동 오피스 PF 만기에 대응하지 못해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을 신청한 것과 사뭇 다른 분위기다. 태영건설의 성수동 PF 규모는 약 480억원으로 이번 롯데건설이 조성한 펀드의 2% 남짓한 수준이었다. 레고랜드 사태 이후 당국의 골칫거리로 꼽혔던 두 건설사의 희비는 이렇게 엇갈렸다.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직전 신용등급은 A-(하향검토), 롯데건설의 현재 신용등급은 A+(부정적). 불과 2노치(notch) 수준의 신용등급 차이가 조(兆) 단위 유동성 조성과 워크아웃으로 갈린 셈이다.


위기 때마다 무적의 주문처럼 소환되던 '대마불사(大馬不死)'가 또다시 회자된다. 물론 '1차 펀드'에서 선순위로 9000억원을 투자한 메리츠금융그룹이 1년 만에 1000억원을 벌어들이면서 증권가의 부러움을 샀던 구조이기도 하고, 이번 공동 펀드에서도 롯데그룹이 7000억원 규모로 후순위를 떠받히고 있어 안정성도 높다는 평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부동산 PF 경계감으로 금융권에선 신규 PF 자금 집행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롯데건설의 PF 매입 펀드에 '시장 메커니즘'으로만 조 단위 자금이 몰렸다고 하긴 무리가 있어 보인다.


지난해 초 '둔촌주공 살리기' 정책의 수혜기업 중 한 곳도 롯데건설이었다. 둔촌주공 일반분양 계약일(2023년1월3일~17일) 첫날 발표된 '1·3 부동산대책'은 전매제한 기간을 8년에서 1년으로 대폭 줄였고, 주택법 개정을 통한 실거주 의무 폐지 계획도 밝혔다. 중도금 대출을 위한 분양가 상한선과 인당 한도도 모두 없앴다. 당시 청약 당첨자의 계약률이 77~78% 수준이 돼야 계약금으로 PF 사업비 7231억원의 만기에 대응할 수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상환에 실패할 경우엔 롯데건설을 포함한 시공 건설사들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다. 해당 PF 사업비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사업비 보증 대출로 차환이 이뤄졌다.


이 같은 '보이지 않는 손'이 롯데건설을 위한 호의는 분명 아니다. 부동산 PF 부실에 대한 경계감이 팽배한 상황에서 둔촌주공 분양 실패 혹은 10대 건설사의 워크아웃 등 대형 악재가 발생하면 금융시장이 패닉으로 빠져들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함으로 보인다. 대형 악재가 예상되는 길목마다 롯데건설이 있었을 뿐이다. 다만 시장에선 '역시 대마불사'를 되뇌고 있다. 국민 경제에 타격을 입힐만한 거대 사업장, 거대 기업이라면 정부의 인공호흡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인식을 공유하는 것이다. 어쩌면 롯데건설의 무리한 PF 기저에도 이런 믿음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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