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범찬희 기자] '중고 신인' KCGI자산운용(전 메리츠자산운용)이 출범과 동시에 자본시장에 일대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국내 1위 승강기 기업인 현대엘리베이터를 상대로 주주 행동주의에 나서면서다. 올해 초 얼라인파트너스(SM), 트러스톤자산운용(BYC), 안다자산운용(KT&G)의 연쇄적 가담 이후 잠잠해진 행동주의 열풍의 불씨가 하반기 들어 다시금 살아나는 모양새다.

KCGI자산운용은 행동주의의 원조격인 KCGI(강성부 펀드)를 새 주인으로 맞은 만큼 스튜어드십 코드(의결권 행사) 강화는 예견된 일이다. 다만 행동주의를 개시한 시점을 놓고 보면 다소 이른 감이 없지 않다.

지난 15일 공식 출범한 KCGI자산운용이 현대엘리베이터 앞으로 주주서한을 발송하는데 걸린 시간은 8일에 불과하다. 이와 동시에 언론에는 스튜어드십 활동 개시를 알리는 자료가 배포됐다. 휘발성이 강한 행동주의를 앞세워 초장부터 이슈의 중심에 서겠다는 KCGI자산운용의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수십건의 관련 기사가 쏟아진 걸 보면 KCGI자산운용은 소기의 성과를 거둔 듯 하다. 운용업계에 자신의 이름 넉 자를 각인시키며 톡톡한 홍보 효과를 누렸다는 점에서 말이다.

경영 개선 방안을 놓고 현대엘리베이터와 소통 중이라는 사실도 이번 행동주의가 홍보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KCGI자산운용은 주주서한을 보내기에 앞서 현대엘리베이터와 만나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이번 사안에 정통한 관계자에 따르면 양측이 만난 건 지난 6월 중순경으로 전해진다. KCGI자산운용 역시 "(현대엘리베이터와) 상당히 우호적이며 개발적이고 건설적인 토론을 진행 중"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비공개로 이뤄지던 행동주의가 KCGI자산운용 출범에 맞춰 공개로 전환된 셈이다.

이는 상대를 자극해 대화의 판을 깰 수 있는 행동이다. 일각에서 KCGI자산운용의 진정성에 의구심이 든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주주친화적 색채를 띈 행동주의란 그럴 듯한 명분 이면에는 회사 인지도 제고라는 목적이 숨어 있는게 아니냐는 얘기다.

KCGI자산운용 앞에 때맞춰 등장한 '지원군'의 성격도 짚어봐야 할 부분이다. 주주서한이 발송된 하루 뒤인 24일,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KCGI자산운용을 지지한다는 내용이 담긴 논평을 발표했다. 2019년 설립된 해당 포럼은 행동주의 펀드의 연합체로, KCGI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곳이다. 강성부 KCGI 대표 뿐 아니라 KCGI자산운용의 초대 수장으로 발탁된 김병철 부회장이 창립멤버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이 KCGI자산운용을 지원사격 하는 건 당연한 일. 마치 중립적인 기관이 동조한 것처럼 비춰져서는 곤란하다.

그렇다고 KCGI자산운용의 이번 행동주의 활동 자체가 어불성설이란 의미는 아니다. KCGI자산운용이 지적한 사내이사진 변경, 해외사업 재검토를 비롯한 각종 재무구조 개선방안은 현대엘리베이터의 주가부양책으로 적절해 보인다. 

다만 주주활동 공개 전환 시점 등 '이슈화 작업'의 색채가 좀 더 옅었더라면 그들의 진정성이 의심받는 상황은 피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