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강동원 기자] 홍콩 소재 A증권사는 지난 2021년 9월부터 약 9개월간 101개 종목에 대해 400억원 상당의 무차입 공(空)매도 주문을 제출했다. B사도 4개월에 걸쳐 160억원 규모 무차입 공매도 주문을 냈다. 무차입 공매도는 주식을 소유하지 않은 상태에서 주문을 넣고 사후 차입하는 방식이다. 국내에서는 시장질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 불법 행위로 간주된다.

금융감독원(금감원)은 글로벌 투자은행(IB)의 관행적인 불법 공매도 행위를 적발했다고 15일 밝혔다. 공매도는 투자자에게 주식·채권을 빌린 뒤 추후에 갚는 투자 방식이다. 주식이 실제로 존재할 때 이뤄지는 '차입 공매도'는 합법이지만, 주식이 없는 상태에서 주문을 내는 '무차입 공매도'는 불법이다.

금감원은 불법 공매도 근절을 위해 지난해 6월 공매도 조사전담반을 설치하고 같은 해 8월 조사팀으로 전환한 뒤 불법 공매도에 대한 면밀한 감시와 집중적인 조사를 실시해왔다. 이번에 적발된 글로벌 IB는 2개사다. 이들은 해외 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공매도(매도스왑) 등 국내 주식투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A사는 다수의 내부부서를 운영, 부서 간 주식을 차입(대여)하는 과정에서 대차 내역을 시스템에 입력하지 않았다. 이에 소유주식을 중복계산, 과다표시된 잔고를 기초로 매도주문을 제출하고 사후에 주식을 차입하는 방식으로 위법행위를 저질렀다. A사 계열사인 국내 수탁증권사도 A사의 무차입 공매도 주문을 지속적으로 수탁했다.

B사는 해외 기관투자가들의 차입이 확정된 주식 수량이 아닌 향후 차입 '가능'한 수량을 기준으로 매도스왑계약을 체결하고 이에 대한 헤지주문(공매도 주문)을 제출했다. 이후 최종 체결된 공매도 수량을 기초로 차입계약을 사후확정하는 방식으로 내부시스템을 운영하는 등 위법행위를 방치했다.

금감원은 글로벌 IB들의 행태를 불법으로 판단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실효적인 대책을 수립하라고 요구했다. 또, 증권선물위원회 심의·의결을 거쳐 제재를 진행할 예정이다. 금감원은 지난해 6월 이후 무차입 공매도 사건을 조사해 약 115억원의 과징금·과태료를 부과한 바 있다. 업계에서는 두 IB의 과징금이 이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금감원은 주요 글로벌 IB를 대상으로 조사를 확대할 예정이다. 일부 IB의 경우 장기간 자본시장법을 위반한 정황이 포착돼 조사 중이다. 타 IB도 이상거래가 발견될 경우 즉시 조사에 착수한다. 필요시에는 해외 감독 당국과 긴밀한 공조를 통해 불법 공매도 행위를 엄단, 자본시장 질서를 확립한다는 계획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글로벌 IB로부터 주문을 수탁받는 국내 증권사도 검사를 강화하겠다"며 "공매도주문 수탁 프로세스·불법공매도 주문 인지 가능 여부 등을 면밀히 점검해 위법사항 발견시 엄중 조치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