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권준상 기자]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의 부재가 7년째 이어지면서 그의 아들인 이현준씨의 그룹 내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티알엔’의 2대주주에 올라 경영을 하나 둘 장악하는 모양새다. 일감몰아주기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 진행했던 지배구조 개편작업이 오너 일가의 지분세습을 공고하게 만들었다.

이현준씨는 현재 지주사격인 티알엔의 지분 39.36%를 쥐면서 부친에 이어 그룹의 2인자에 올라있다. 이현준씨에 대한 그룹 내 2인자 만들기는 장기간 추진됐다. 이현준씨는 티알엔 설립 전 티시스와 한국도서보금의 지분을 각각 49%, 48%씩 갖고 있었다. 티알엔은 올해 상반기 시스템통합(SI)업체 티시스 투자부문과 한국도서보급 그리고 쇼핑엔티를 합병해 설립한 법인이다.

이현준씨는 현재 티알엔의 한 축을 맡고 있는 한국도서보급의 지분을 2005년과 2006년 연이어 매입하면서 지분 49%를 확보했다. 2006년에는 티시스의 주주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해 지분 49%를 취득하면서 티시스의 2대주주로 올라섰다. 당시 티시스는 이 전 회장이 지분 전량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 전 회장이 유증에 참여하지 않고, 실권주를 이현준씨에게 배정했다. 이현준씨로의 후계작업을 알린 신호탄으로 볼 수 있다. 같은 해 부동산 유지·보수업체 티알엠의 지분도 매입에 나섰다. 티알엠 역시 이 전 회장이 지분 100%를 쥐고 있던 회사였는데 티시스와 마찬가지로 이 전 회장이 유증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이현준씨가 지분 49%를 손에 쥐었다. 티시스와 티알엠은 그룹사와의 내부거래를 통해 성장했고, 이를 통해 이현준씨는 배당금도 챙겼다.

이현준씨가 절반 가량의 지분을 취득한 티시스와 티알엠은 이후 그룹 주요 계열사인 태광산업의 지분을 매입하면서 영향력을 11.2%로 확대했다. 티시스와 티알엠은 2013년 합병했고 이현준씨는 태광산업의 지분 44%를 손에 쥐면서 2대주주로 올랐다. 이듬해부터 2015년까지 2년간 60억원 규모의 배당도 챙겼다. 주요 계열사의 지분 매입과 배당을 통해 부친에게서 자신으로 이어지는 승계과정에서 활용할 수 있는 두둑한 재원도 마련한 셈이다.

이현준씨의 그룹 내 2인자 구축은 올해 완성됐다. 상반기에 티시스 투자부문과 한국도서보급이 쇼핑엔티와 합병해 티알엔이 탄생했고 이현준씨는 지분 39.36%로 부친과 함께 티알엔-태광산업·대한화섬-그룹 계열사로 이어지는 지배구조의 정점에 서게 됐다.
그의 역할론 역시 고개를 드는 모습이다. 이 전 회장에 대한 ‘황제 보석’ 논란이 점증되고 검찰이 법원에 이 전 회장에 대한 보석 취소를 요청하면서 오너 공백의 장기화 가능성이 제기된데 따른 영향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아직 그룹 경영에 참여할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1994년생으로 아직 20대 중반인데다 사회경험이 많지 않아 경영수업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현재 태광그룹은 오너 공백 속에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계열사별 실적이 정체되고는 있지만 당장 급하게 오너공백을 메울 정도로 서두를 상황까지는 아니기 때문이다. 주력 계열사인 태광산업은 3분기말 현재 2167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는데 이는 지난해 순이익(1792억원)보다 375억원 많은 수준이다. 대한화섬은 3분기말 현재 지난해(200억원)의 두 배를 웃도는 순이익(429억원)을 달성했다.

이런 가운데 이 전 회장의 큰 매형이자 태광산업의 고문을 맡고 있는 허승조 GS리테일 전 부회장의 조력자설이 제기된다. 이 전 회장의 공백 속에 이현준씨에 대한 경영수업을 지원하고 있다는 추측이다. 허 전 부회장이 태광그룹의 지배구조개편이 진행되던 무렵에 태광산업의 고문으로 합류한 점 역시 이현준씨의 ‘조력자’ 역할을 하기 위한 것이란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