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한보라 기자] 4년 전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는 '가전을 나답게'를 새로운 통합 슬로건으로 제시했다. 글로벌 가전업계가 성숙기에 접어든 시장을 견인하기 위한 새로운 가치를 고민하던 시점이었다. 삼성전자는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개인별 맞춤형 가전을 답으로 제시했다. 프리미엄 가전제품 라인업인 비스포크(BESPOKE)의 첫 제품도 이때 출시됐다. 

맞춤형 가전에 대한 삼성전자의 남다른 자신감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맞춤형 가전 프로젝트는 2014년부터 시작됐다. 당시 삼성전자는 미국 개방형 플랫폼 업체 스마트싱스를 인수, 사물인터넷(IoT) 기반 스마트홈을 기획했다. 소비자 요구를 스스로 학습하는 똑똑한 가전을 만들기 위해 인공지능(AI) 기술까지 접목했다. 올해 베를린 국제가전전시회(IFA)에서는 모든 가전에 신경망처리장치(NPU)를 탑재하겠다고 밝히며 초연결에 대한 의지를 분명하게 밝혔다.

그러나 장밋빛 비전과 함께 잘 나가던 삼성전자 생활가전은 지난해부터 주춤했다. 삼성전자는 투자설명회(IR)를 포함한 대내외 소통창구를 통해 전 세계적인 고금리, 고물가가 가전 수요를 떨어뜨렸다고 설명했다. 집콕이 활발하던 코로나19 당시 교체주기가 앞당겨 발생한 기저효과도 장부에 반영됐다고 귀띔했다. 이해되는 측면은 있다. 개별 회사가 거대한 매크로(거시경제) 흐름을 거스르기는 힘든 법이다. 

시장 일각에서는 다른 해석도 나왔다. 삼성전자 반도체가 무너지면서 생활가전도 함께 쓰러졌다는 것. DX부문 실적에 생활가전 뿐만 아니라 스마트폰까지 포함돼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삼성전자 총 매출에서 DX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60%로 압도적이다. 실제 돈이 되는 영업이익은 사정이 다르다. 반도체 다운사이클 이전에는 DS부문이 삼성전자 총 영업이익의 절반을 지탱해왔다. 

이렇게 벌어들인 일부로 영업에 쓰이는 비용(광고선전비+판매촉진비)을 충당하면서 DX부문 매출을 지탱해왔다는 주장이다. 지난해 상반기 삼성전자 DX부문 매출과 광고비+판촉비의 합은 각각 92조5240억원, 6조2253억원을 나타냈다. 올해 상반기 삼성전자 DX부문 매출과 광고비+판촉비의 합은 각각 전년동기대비 6.59%, 12.25% 위축됐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 DS부문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48.59%, 148.52% 줄었다. 

앞선 해석에 과장을 보태면 주춧돌(반도체) 없이는 생활가전 사업이 온전히 영위되기 힘든 게 지금 삼성전자의 현 주소다. 이들은 문제의 원인을 삼성전자 내부의 지나친 '비용절감' 기조에서 찾는다. 한때 삼성전자는 엔지니어 조직이라고 불릴 정도로 기술력에 집중하는 분위기였다. 회사 전반적으로 장부상 이익에만 몰두하는 사업 구조로 뒤바뀌면서 경쟁사 대비 기술 경쟁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기술력 저하가 곧 사업부 매출의 마케팅 비용 민감도를 높였다는 비판이다.

'초격차'를 빼놓고는 삼성전자를 이끄는 전략을 설명하기 어렵다. 어느새 생활가전은 삼성전자 내 비주류 사업으로 밀려났지만 초격차 전략에서까지 배제될 수는 없다. 여태껏 삼성전자는 위기 속에서 왕관의 무게를 이기고 한 단계 더 높은 곳으로 도약하는 모습을 보여줘왔다.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가 시장 안팎의 우려를 이겨내고 장밋빛 비전을 실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가전을 나답게, 가전을 삼성전자답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