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한보라 기자] 내년 반도체 업황을 좌우할 키워드로 '가동률'이 꼽혔다. 올해 반도체 한파로 메모리와 시스템 반도체 팹 가동률은 모두 하향 조정됐다. 낸드플래시 등 일부 메모리 팹 가동률은 전년대비 반토막난 상황이다. 고금리, 고물가로 자본적투자(CAPEX)를 늘리긴 어렵지만 가동률 상향은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아직 AI 수요는 전체 반도체 응용처 중에서 한자릿수%에 불과하다. 하지만 서버 업체 동향으로 미루어 짐작했을 때 고대역폭메모리(HBM3) 등 AI 학습용 서버향 고부가 메모리 출하는 지속 증가할 예정이다. 내년 주요 PC 업체가 AI 반도체가 탑재된 AI 디바이스를 내놓으면 시스템 반도체까지 AI 발 온기가 전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종욱 삼성증권 수석 연구원은 지난 7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시스템반도체 포럼'에서 "내년 가장 큰 화두는 가동률 회복"이라며 "메모리나 파운드리나 가동률을 많이 줄여놨기 때문에 이 가동률을 어떤 속도로 올릴 것이냐, 공급 업체가 얼마나 욕심을 조절할 수 있느냐가 내년도 수급을 결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올해도 업황 반등을 부추기는 건 AI다. 증권가에 따르면 전체 메모리 반도체 응용처에서 AI 비중은 4%에 불과하다. 스마트폰, PC 등 레거시 비중은 65% 수준이다. 아직 한자릿수%에 불과한 시장이지만 기존 시장 수요가 받쳐준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업계는 코로나19 이후 극도로 부진했던 세트제품 수요가 올 하반기 바닥을 찍었다고 진단했다. 세부적으로 PC는 올해 8~9월, 스마트폰은 10월에 바닥을 찍었다는 관측이다. 이 같은 흐름은 세트업체 부품 발주로 확인할 수 있다. 애플 아이폰, 화웨이 메이트는 전년대비 부진한 출하량에도 반도체 등 부품 주문을 늘리고 있다. 내년 초까지는 세트업체 부품 사재기 현상이 이어질 전망이다.
이 수석 연구원은 "전체적인 관점에서 PC 수요는 상승 국면으로 향하고 있고 모바일 수요는 바닥을 굉장히 단단하게 형성, 부품 재주문이 시작된 상황"이라며 "세트업체들이 1분기까지는 부품 주문을 세게 줄 것으로 보이지만 이후 주문 여부가 역대급으로 불투명하다는 게 변수"라고 설명했다.
서버 업체도 내년 자본적투자(CAPEX)를 올해 대비 두 자릿수% 늘릴 방침이다. 서버 업체가 CAPEX를 더 늘릴 요인은 챗 GPT 등 AI 서비스 활성화에 달려있다. 지난 1일 마이크로소프트는 기업용 AI 서비스 'M365 코파일럿(Copilot)'을 출시했다. 코파일럿은 워드 등 업무용 MS 앱에 생성형 AI 기술을 더한 생산성 향상 서비스다. 이메일 초안을 AI가 대신 작성하는 등 근로자 업무를 돕는 구조다.
구글은 연초 챗봇 서비스 바드(Bard)를 선보였다. 구글은 미국 내 일부 기업을 대상으로 코파일럿과 유사한 기업용 AI 서비스 '듀엣(Duet) AI'를 테스트하고 있다. 국내 기업 네이버도 자체 거대언어모델(LLM) 하이퍼클로바X에 기반한 수익 모델을 구상하고 있다.
이 수석 연구원은 "AI 서비스 검증은 반도체 수요에 굉장히 중요하다"며 "지난 30년간 사람이 기계를 동작하던 시대에서 사람과 기계 간 대화를 나누는 시대로 바뀔 수 있을지, 이 대화의 형식이 새로운 플랫폼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검증이 내년부터 본격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런 AI 서비스의 성공은 곧 서버 업체들의 CAPEX 증가로 이어지겠다"고 덧붙였다.
AI PC와 같은 새로운 하드웨어의 등장도 주목할 거리다. AI PC는 신경망처리장치(NPU) 형식 AI 반도체를 탑재, 온디바이스로 AI 서비스를 구현하는 하드웨어다. 즉, AI 반도체를 탑재하면 인터넷 연결 없이도 PC에서 AI 서비스를 누릴 수 있게 된다. 리사 수(Lisa Su) AMD 최고경영자(CEO)는 "오는 2028년이면 AI PC가 전체 노트북 시장 60%를 차지하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 6월 AMD는 AI 가속기(라이젠 AI)가 탑재된 CPU 라이젠 7040HS(개발명 : 피닉스)를 주요 PC 제조사에 공급했다. 인텔은 NPU를 탑재한 개인용 14세대 CPU(코드명 : 메테오레이크)를 선보였다. 퀄컴도 AI 서비스를 지원하는 PC용 시스템온칩(SoC) 스냅드래곤X엘리트를 준비 중이다. GPU의 강자 엔비디아 역시 2025년부터 AI용 CPU를 출시하겠다는 계획이다.
이 수석 연구원은 "AI 반도체가 탑재된 제품만 새로운 AI 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상황에서 고객들이 새로운 AI 서비스에 만족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하드웨어를 교체, 반도체 수요도 함께 늘겠다"며 "이런 현상이 내년부터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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