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태웅 기자]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바람의나라'가 1996년 세계 최초로 그래픽 온라인 게임의 시대를 열었다. 그로부터 17년이 지난 지금, 주요 게임사들이 혁신적인 게임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빅데이터, 클라우드, 메타버스, 블록체인, 인공지능(AI) 등 새로운 기술을 적용해오고 있다.

넥슨 또한 2017년 데이터 사이언스 연구조직 인텔리전스랩스를 설립하며 AI를 게임에 접목해오고 있다. 머신러닝과 딥러닝 기술을 활용한 게임 시스템을 개발하고 관련 솔루션을 자사 게임에 적용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인텔리전스랩스는 현재 약 700명 규모의 인력을 확보한 업계 최대 연구조직으로 자리 잡았다. 최근에는 생성형 AI 연구에 박차를 가하며 게임 생태계를 고도화해 나가고 있다.

◆데이터 기반 게임 운영 플랫폼 '게임스케일'

넥슨은 지난해 4월 인텔리전스랩스가 자사의 다양한 조직에서 축적한 노하우를 집약해 개발한 플랫폼·데이터 기반 솔루션 '게임스케일'을 외부에 처음 공개했다. 게임스케일은 게임 내 결제, 상점, 쿠폰 이용 등의 플랫폼 서비스와 보안, 데이터, UX분석 등 인게임 데이터에 기반한 게임 운영 솔루션이다.

넥슨은 그동안 자사 게임에만 적용해 오던 게임스케일을 오픈 솔루션으로 전환하면서 더 많은 게임사가 이를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업계 전체의 성장을 도모한다는 취지다. 국내외 게임사는 물론 외부 솔루션 업체들은 게임스케일에 관심을 보이며 동반 성장이라는 넥슨의 취지에 공감했다.

게임스케일이 중점으로 두는 것은 이용자 경험 강화다. 게임 매칭을 단순히 유저 간 실력차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유저 개인의 취향과 플레이 스타일이 반영된 맥락 정보(데이터)를 통해 정밀한 매치 메이킹을 하거나, 게임 업데이트 내용 중에서도 유저가 선호할 만한 콘텐츠를 선별해 추천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2022년 '던전앤파이터 모바일' 출시 당시에는 서비스 시작 3시간 만에 비인가 프로그램을 사용한 어뷰징 유저를 발견해 신속히 대응하기도 했다. 이처럼 게임 보안을 강화해 이탈률을 줄이는 역할도 수행한다.

'메이플스토리', '던전앤파이터', 'FC 온라인' 등 30년 가까이 게임 서비스를 통해 축적해 온 라이브 운영 경험과 이용자 데이터가 기반이 됐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이 회사의 설명이다. 게임스케일은 ▲보안 패키지 ▲마케팅 패키지 ▲커뮤니티 패키지 ▲비즈니스 패키지 ▲데이터 분석 패키지 ▲QA 패키지 ▲운영 패키지 등 총 7개 패키지 73개 제품으로 구성, 게임 안팎의 다양한 요소에 대한 기술 서비스를 지원한다.

게임스케일은 실제 유저들의 만족도를 높여 수치적으로도 유의미한 성과를 냈다. 게임 내 개인화 광고를 집행하자 164% 이상의 리텐션 효과를 기록했다. '카트라이더 러쉬플러스'는 이탈 가능성 있는 40%의 이용자의 재접속을 유도했으며, 'FC 온라인' 역시 3년 연속 최고 매출을 경신했다.

인텔리전스랩스는 앞으로도 게임개발, 사업, 보안, 인프라, 운영, QA 등 다양한 유관부서와 함께 게임 서비스 관련 기술과 운영 노하우를 게임스케일에 반영해 서비스 품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지속할 예정이다.

◆몰입도 높이는 AI NPC

인텔리전스랩스가 지속적으로 연구, 개발하는 수많은 솔루션의 지향점은 '플레이어 즐거움의 극대화'다. 즉 유저가 경험하는 전반적인 서비스를 개선해 게임 몰입도를 지속적으로 향상시키는 것이 연구의 주된 골자다. 배준영 넥슨 인텔리전스랩스 본부장도 게임스케일 공개 이후 "넥슨만의 AI 모델을 만들기보다 현존하는 AI 모델을 가지고 실제 서비스에 적용하는 쪽에 포커스를 두고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맥락에서 넥슨이 최근 집중하고 있는 분야는 생성형 AI다. 지금까지의 게임이 초기 개발 단계와 라이브 서비스 과정에서 설정한 공통된 스토리 콘텐츠만을 제공했다면, 인텔리전스랩스는 생성형 AI를 통해 유저 개인이 자신의 플레이 스타일에 따라 게임 자체와 1:1로 소통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인텔리전스랩스가 고안한 '넥슨 보이스 크리에이터' 기술 모델이 그 예다. '보이스 크리에이터'는 자사 게임 유저들 사이에서 인지도 높은 게임 디렉터의 목소리와 억양을 거의 동일한 수준의 음성으로 생성하거나, 이러한 음성 생성 기술을 활용해 성우의 녹음 없이도 NPC에 음성을 입히는 것이다. 또 스포츠 게임에서 중계 또는 해설을 원하는 사람의 목소리로 변환할 수 있는 기술에 대한 연구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이를 통해 유저는 자신의 특성을 고려한 개인화된 메시지나 정보를 음성으로 듣게 돼 게임에 보다 몰두할 수 있다.

보이스 크리에이터에는 딥러닝 기반의 TTS(Text-to-Speech), 즉 입력한 텍스트를 음성으로 변환하는 기술이 적용됐다. 여기에 실제 음성 데이터의 특징도 적용할 수 있다. 생성한 음성에 세부적인 한국어의 특성과 감정 표현까지 더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에 다양한 상황에 어울리는 음성 합성이 가능해졌고, 소량의 데이터만으로도 완성도 높은 결과물이 만들 수 있게 됐다.

또한 넥슨은 게임 내 캐릭터가 정해진 스크립트를 벗어나 유저와 직접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AI NPC' 기능도 연구 중이다. NPC나 보스 등 고정 캐릭터가 정해진 대사를 반복하는 대신, 개별 페르소나를 가진 NPC가 게임 내 세계관을 바탕으로 개별 플레이 특징에 맞는 다양한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다. AI NPC가 도입되면 데이터를 토대로 사냥, 퀘스트 수행 등 유저가 선호하는 콘텐츠나 유저에게 부족한 부분을 조언해주는 등 1:1 소통에 가까운 게임을 구현할 수 있다. 게임의 콘텐츠가 풍성해지고 유저의 몰입도가 한층 높아진다는 점에서 AI NPC는 인텔리전스랩스가 추구하는 이용자 경험 강화에 부합한다.

◆AI 윤리 기틀 마련

생성형 AI가 게임의 재미와 편의성을 대폭 향상시킬 수 있지만 동시에 윤리적인 부분에서 고민도 필요하다. 기술과 윤리 간 격차가 벌어질 경우 AI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인텔리전스랩스도 검토, 개발 중인 다양한 생성형 AI 기술에 따르는 AI 윤리 정책 수립에 집중하고 있다.

가령 AI NPC는 자유로운 대화가 가능하기 때문에 정확하지 않거나 거짓인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 편향되거나 차별적, 혐오적인 발언을 할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우려를 보완하고자 인텔리전스랩스 내부에서는 여러 단계의 방지책을 고민 중이다. 넥슨은 도용범죄 탐지 기술, 게임 속 욕설을 탐지하고 차단할 수 있는 고성능 AI 기술을 확보하고 있다. 이를 AI에게 학습시키고 확장해 자유도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해 나갈 예정이다.

한편, 인텔리전스랩스는 앞으로 출시할 신작에도 게임스케일을 비롯한 다양한 AI 기술을 폭넓게 적용하기 위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넥슨 실험실'을 통해 유저 개인화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테스트할 예정이다.

배준영 넥슨 인텔리전스랩스 본부장은 "게임 몰입도와 편의성 향상은 물론, 유저들이 기존에 경험해보지 못했던 게임 플레이를 제공할 수 있도록 생성형 AI를 포함해 전방위적인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