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박민규 기자] 롯데케미칼의 파키스탄 고순도테레프탈산(PTA) 자회사 롯데케미칼파키스탄리미티드(LCPL) 매각이 또 다시 무산됐다. 다만 LCPL의 매각가가 1924억원에 불과해 매각 불발에 따른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란 게 시장의 시각이다. 하지만 롯데케미칼이 본업인 석유화학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가치사슬(밸류체인) 전반을 조정 중인 상황이라 LCPL 매각 무산이 이 회사의 벨류에이션(기업가치)을 끌어내릴 악재가 될 것이란 전망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18일 증권사 한 연구원은 "상당수 증권사가 롯데케미칼이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편하는 과정에서 차질이 빚어질 수도 있을 것으로 보고 밸류에이션 하향을 검토 중"이라며 "본업인 석유화학 시황 부진도 지속되고 있지만 새로운 성장 동력 키우기도 더딘 상태고, 다수의 투자 계획도 지연되는 등 변수가 많은 상황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롯데케미칼은 (세계적인 친환경 기조에 따라 석유화학의 입지가 좁아질 것이라 보고) 앞선 2021년부터 고부가가치 및 친환경 소재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하기 위해 힘을 싣고 있다. 2022년만 해도 중국 기업들이 공격적으로 범용 제품을 생산하는 시설을 증설하며 가격 전쟁에 나서자 이 지역 기초 석유화학 공장들을 모두 매각하는 한편, 같은 해 이차전지 핵심 소재인 동박을 생산하는 일진머티리얼즈를 2조7000억원에 인수했다.

반면 PTA 등 기존 석유화학 사업을 일부 정리하기 위해 울산 공장 내 관련 공정의 가동률을 60% 수준으로 낮추고, 다른 제품 전용 라인으로 바꾸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실제 이 회사는 2020년 하반기부터 울산공장 PTA 라인의 가동을 중단하고 고순도이소프탈산(PIA)을 생산 중이며, 일부 설비를 자회사인 롯데정밀화학 생산라인에 전환배치 한 것으로 전해진다. 아울러 전남 여수공장의 경우 생산 중인 EG(에틸렌글리콜)의 생산시설과 인력에 대한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전언이다. LCPL 처분이 사실상 포트폴리오 재편의 마지막 퍼즐인 셈이다.

롯데케미칼의 투자 계획이 거듭 지연되고 있는 부분도 밸류에이션 하락이 점쳐지고 있는 배경이다. 이 회사는 오는 6월로 잡았던 1000억원 규모 페트 재활용 시설 구축 투자를 2027년까지로 연기했고, 2030년까지 6조원을 투입하겠다던 수소 사업의 투자 규모 역시 3조원으로 축소했다. 여기에 이훈기 롯데케미칼 사장은 연초 석유화학 업계 신년 인사회에서 올해 예정된 3조원 규모의 자본적 지출(CAPEX)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시장 한 관계자는 "석유화학은 중국의 증설에 따른 공급 과잉, 경기 둔화로 인한 수요 위축 등 비우호적 업황이 이어지고 있으며 올해 시황이 개선되더라도 제한적인 수준일 것"이라며 "이러한 상황에서 롯데케미칼은 본업인 석유화학을 대체할 캐시카우 육성이 시급한데 포트폴리오 재편이 늦어지며 성장성에 대한 시장의 기대감도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LCPL 매각 작업이 금액 측면에서는 롯데케미칼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지만 밸류체인 측면에서는 여파가 적잖기에 밸류에이션 하향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롯데케미칼 측은 "장기 로드맵에는 변화가 없고 수소 투자 경우 2035년까지 포함하면 오히려 확대하는 것"이라며 "투자 축소가 아니라 속도 조절 차원이라 밸류에이션 하향 요인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반박했다. 이어 "변화하는 시장 환경에 맞춰 사업 구조 개편과 체질 개선을 통한 포트폴리오 고도화를 차질 없이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