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범찬희 기자] 기아가 2년 뒤 '형님'격인 현대차 보다 10조원 많은 27조원 가량의 순현금을 보유하게 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채산성이 좋은 SUV(스포츠유틸리치차량)에서 현대차 보다 강점을 보이고 있는 데다 적정 규모의 투자가 예정돼 있어 현금 유출에 대한 부담이 적다는 이유에서다.

김영훈 한국신용평가 수석연구원(애널리스트)은 25일 '2024 크레딧 이슈 세미나'에서 "지난 2019년만 해도 2조3000억원에 불과했던 기아의 순현금은 지난해 16조4000억원에 육박하며 현대차를 소폭 상향하게 됐다"며 "기아는 현대차 보다 투자와 고정비 부담이 덜한 만큼 2026년께면 보유한 순현금이 26조6000억원에 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현대차의 순현금(현금성자산+유동성금융자산-차입금)은 2년 뒤에도 현재와 유사한 16조원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줄곧 순현금 규모에서 10조원 가량의 격차를 보여 왔던 현대차와 기아 두 회사 간의 현금 사정이 뒤바뀌는 셈이다.

김 연구원은 기아의 현금 비축분이 두드러지게 개선된 원인 중 하나로 SUV 선호 현상 확대를 꼽았다. 세단에 비해 가격대가 높은 편인 SUV 수요가 늘면서 해당 세그먼트에 강점을 가진 기아가 수혜를 보게 됐다는 분석이다.

실제 스포티지, 소렌토, 셀토스 등 기아의 전체 판매실적에서 SUV가 차지하는 비중은 63.9% 수준으로 현대차(58.5%)를 앞선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SUV가 차지하는 비중이 50%가 체 되지 않는 점에서도 기아의 경쟁력을 엿볼 수 있다. 고부가가치 세그먼트인 SUV의 인기는 기아가 지난해 역대 최대인 99조8000억원의 매출과 11조6000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할 수 있었던 주요인으로 작용했다.

기아는 SUV에 힘입어 이익창출력이 개선되고 있지만서도, 투자규모는 적정선을 유지해 현금 유출에 대한 우려가 적은 상황이다. 올해 기아가 CAPEX(자본적지출)와 R&D(연구개발) 등을 위해 지출하게 될 비용은 8조1000억원으로 전년 보다 21% 증가했다. 하지만 2025년에는 총 투자규모가 7조원으로 감소한 뒤 2026년 6조3000억원, 2027년 6조2000억원으로 점차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현대차와 공동으로 진행하는 투자건에서 출자 부담이 덜하다는 점도 기아의 현금 보유력에 이점으로 작용했다. 현대차그룹이 올해 10월 준공을 목표로 미국 조지아주에 건립 중인 전기차 전용 공장 '메타플랜트아메리카'(HMGMA)에서 현대차와 기아의 투자비중은 6:4대 가량이다. 또 AI(인공지능) 기술 연구를 위해 9500억원을 투입한 '보스턴 다이내믹스'(Boston Dynamics AI Institute) 인수에도 현대차와 기아는 각각 47%와 28% 출자금을 댔다.

이러한 풍부한 유동성은 기아가 현대차와 함께 신용등급 트리플 A를 목전에 둘 수 있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지난 19일 한신평은 국내 신용평가 3사(한신평·한기평·나이스) 가운데 선제적으로 기아의 신용등급 전망을 기존 AA/안정적(Stable)에서 AA/긍정적(Positive)로 상향했다.

김 연구원 "기아는 현대차와 매우 높은 영업적 긴밀성을 보유하고 있는 데다 과거 대비 펀더멘털을 크게 개선해 나가고 있다"며 "특히 이익창출력 개선에 힘입어 최근 3년 동안 매년 4조원 이상의 순현금을 쌓아왔고, 상대적으로 적은 투자 규모와 고정비 부담 등으로 이러한 기조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