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유범종 기자] 올 한해 조선용 후판 가격협상에 또 다시 난항이 예고되고 있다. 현재 국내 철강업체들은 높은 원료 매입가격을 명분으로 강한 인상 요구에 나서고 있다. 반면 조선업계는 아직은 인상 여력이 없다며 팽팽하게 맞서는 형국이다. 최근에는 일부 업체간 협상에서 그동안 기준으로 삼아왔던 반기협상의 틀까지 깨지며 더욱 미궁 속으로 빠지고 있다.

1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국내 후판 3사(포스코, 현대제철, 동국제강)와 조선사들은 이달부터 본격적인 조선용 후판 가격협상에 돌입한 것으로 파악된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올해 첫 가격협상이 시작됐다”면서 “하지만 이견이 커 협상 진전은 더딘 상황이다. 타결까지는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올해 후판 가격협상에서 가장 큰 쟁점은 가격에 대한 양 업계간 이견을 얼마나 줄이느냐가 될 전망이다.

국내 후판 생산업체들은 올해는 반드시 가격 인상을 관철시킨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지난해 크게 높아진 원료 매입가격을 제품에 온전히 전가하지 못하면서 큰 폭의 실적 악화가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내 후판업체들의 생산원가 인상 요인은 톤당 7~8만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실질적인 조선용 후판 인상 폭은 톤당 3만원 수준에 불과했다. 지난해와 같은 상황이 올해 또다시 반복된다면 실적 개선은 요원할 수 밖에 없다.

대형 철강사 관계자는 “지난해 생산원가 인상분을 후판가격에 온전히 반영하지 못하면서 모든 부담을 철강사들이 떠안았다”면서 “올해는 ‘배수의 진’을 가격 현실화에 집중할 방침이다”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국내 후판업체들은 유통향 후판가격 인상을 우선 추진하고 있다. 포스코, 현대제철 등은 올 1~2월에만 톤당 3~5만원 가량의 유통향 후판가격 인상을 단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통향 판매가격 인상을 통해 우선적으로 수익성을 제고하고 이를 기반으로 조선업계와의 가격협상에서 인상 명분을 더욱 공고히 하겠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국내 조선사들은 아직까지 후판가격 인상 여력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 중이다. 최근 신규 수주는 늘고 있으나 기존에 계약한 건조 물량 대부분이 저가 수주 물량들이고 경영실적 부진 여파가 해소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지난해 국내 대형 조선사들의 실적을 보면 한국조선해양만 영업 흑자전환에 성공했을 뿐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은 부진한 실적을 이어갔다. 삼성중공업은 영업손실 폭이 확대되며 5년 연속 적자구조를 이어갔고, 대우조선해양도 영업이익이 전년대비 78.6% 가량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유조선, 컨테이너선, 해양플랜트 등 선박 종류에 따라 후판 구매비용은 건조원가의 10~20%를 차지한다. 결코 적지 않은 비중이다”며 “아직까지 대부분 조선사 사정이 어렵다 보니 소재가격에 대한 인상여력은 사실상 거의 없는 상태다”고 말했다.

결국 양 업계 모두 절박한 수익성 확보를 위해 가격협상에 전력투구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타결까지는 순조롭지 않은 여정이 펼쳐질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후판 가격협상에서는 기간 변화도 주목된다. 그동안 국내 후판 가격협상은 반기타결을 기준점으로 삼아왔다. 그러나 일부 철강업체와 조선업체는 지난해 4분기와 올 1분기 협상을 분기로 타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향후 협상기준 시점이 유동적으로 바뀔 가능성도 충분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관련업계 관계자는 “통상 반기로 진행되어 오던 후판 가격협상의 틀이 최근 깨졌다. 올해는 각 사별 이해관계에 따라 협상이 분기 혹은 연간협상으로 진행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