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민승기 차장] 최근 바이오 업계에서는 주주행동주의 바람이 거세다. 배당금이나 시세차익에만 주력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부실 책임 추궁, 구조조정, 경영투명성 제고 등 경영에 적극 개입해 주주가치를 높이는 행위에 나서는 일명 '행동주의 투자자' 시대가 열린 셈이다. 

과거에도 제약바이오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주주행동주의 캠페인이 있었지만 최근 들어 결이 달라졌다. 단순히 대주주의 횡포를 견제하고, 주주가치 제고 요청을 넘어 기업 경영권을 위협하는 일도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다.

헬릭스미스가 대표적인 사례다. 헬릭스미스는 2019년 기대를 모았던 당뇨병성 신경병증 치료제 엔젠시스(VM202)에 대한 미국 임상에서 긍정적인 결론을 도출하지 못했다. 당연히 주가 급락으로 이어졌다.

뿐만 아니라 헬릭스미스가 2016년부터 5년간 연구개발비(1302억원)보다 고위험자산(2643억원)에 더 많은 돈을 투자했다가 손실을 본 것이 알려지면서 주주들의 분노를 샀다. 여기에 관리종목 지정을 피하기 위해 진행된 유상증자에 당시 최대주주였던 김선영 전 대표가 참여조차 하지 않으면서 논란이 더욱 확대됐다.

이는 헬릭스미스 소액주주들이 전면에 나서게 되는 직접적인 명분이 됐다. 주주행동주의 관점에서 명분은 우호지분을 결집시킬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소액주주들은 당시 비상대책위원회(현 소액주주연합)를 만들고 경영진들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주가 급락이라는 현실 속에 주주가치 제고라는 명분은 주주들의 압도적인 지지로 이어졌다. 실제로 비대위는 2021년 임시주주총회에서 김선영 전 대표의 해임안건은 통과시키지 못했으나, 그 과정에서 40%가 넘는 지분을 모으는 저력을 보였다. 이때 대주주를 포함한 경영진들의 횡포를 견제하기 위한 소액주주 측 추천 이사선임도 이뤄졌다. 

이후 사측과 비대위 측간의 화해모드가 조성되며 '해피엔딩'을 맞는 듯 했다. 하지만 불과 4개월 만에 또 다시 김 전 대표 해임 안건을 올리겠다는 계획을 공개하며 갈등이 재점화됐다. '회사가 주가 하락을 방어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비대위의 '기다림' 없는 갈등 유발은 오히려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다는 명분에 의심을 샀다. 결국 일부 소액주주들이 '반비대위' 전선을 구축했고, 이는 비대위가 지금까지 회사 경영권을 장악하지 못한 핵심적인 원인이 됐다. 

최근에는 비대위 측 사내이사가 내부정보를 유출한 정황이 알려졌다. 특정 소액주주 세력에게만 비공개 내부자료가 유출된 것이 사실이라면 기업 가치 상승보다 경영권을 장악하는데 더 관심이 많은 것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비대위는 많은 소액주주들로부터 질타를 받기도 했다. 

애당초 비대위는 헬릭스미스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주주 가치를 제고하겠다며 탄생했다. 이 명분 하나로 비대위는 유례없는 지분율을 확보할 수 있었고, 지금까지도 많은 주주들이 위임장을 거리낌 없이 내주는 배경이 됐다. 하지만 명분이 희석되면 소액주주들의 지지도 덩달아 줄어들 수 밖에 없다.

'누군가가 나의 이야기를  따르도록 말하는 것'을 설득이라고 한다. 이같은 설득을 잘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따를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명분'을 제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오는 3월 임시주총에서 양측 간의 치열한 표대결이 또 펼쳐진다. 이날 합리적인 명분은 누구에게 있는지, 이 명분이 소액주주들의 진심을 얼마나 설득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