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크선 업계, PEF發 합종연횡 시작되나
다양한 선박 포트폴리오·우량한 재무구조 갖춘 벌크선사 출범 기대감

[딜사이트 권일운 기자]
한앤컴퍼니의 SK해운 인수합병(M&A)이 사모펀드(PEF)발 벌크선 업계 합종연횡의 신호탄이 될지 해운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앤컴퍼니는 한때 국내 최대의 해운사였던 한진해운의 벌크선 사업부를 인수해 에이치라인해운을 출범시킨 데 이어 SK그룹 소속의 전업 벌크선사인 SK해운마저 인수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해운업 자체는 설비투자에 상당한 자금이 소요되고, 거시 경제 지표에 따라 업황 부침이 심하다는 점에서 PEF가 인수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업종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고정 운임의 중장기 계약을 기반으로 한 벌크선사의 경우 현금흐름에 대한 불확실성이 상대적으로 적은 까닭에 PEF에게도 매력적인 투자 대상이 될 수 있다는 평가다.


4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한앤컴퍼니는 현재 SK해운의 과반 지분을 최대 1조5000억원에 매입하는 내용의 협상을 진행 하고 있다. 기존 주주들의 지분을 사들이는 것보다는 1조원 이상의 자금을 신규로 투입, 신주 지분을 확보하는 구조가 유력하게 논의되고 있다. SK해운은 한앤컴퍼니가 공급한 신규 자본을 토대로 차입금을 상환해 금융비용을 줄이는 방식의 손익구조 개편에 나설 전망이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해운사는 좀처럼 PEF의 투자 대상에 거론되지 않았다. 컨테이너선 사업을 필두로 한 해운업은 개별 PEF가 통제할 수 없는 외생적 변수에 큰 영향을 받는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벌크선 사업의 경우 정해진 계약을 기반으로 매출을 일으키는 특성을 갖고 있다. 현금 흐름을 중시하는 PEF 입장에서도 충분히 도전해볼 만한 투자 대상인 셈이다.


비교적 이른 시기에 벌크선사 투자에 나선 곳은 메디치인베스트먼트였다. 메디치인베스트먼트는 지난 2012년 프로젝트 펀드(단일 목적 투자를 위해 조성하는 펀드)를 통해 중견 벌크선사 폴라리스쉬핑의 선박 구매 대금을 지원했다. 장기 운송계약을 이행하기 위한 선박 구매 대금 확보 목적의 투자인 만큼 추후 엑시트(회수)는 원활할 것이라는 게 메디치인베스트먼트의 판단이었다.


PEF발 벌크선사 바이아웃의 신호탄을 날린 곳은 IMM프라이빗에쿼티(IMM PE)와 IMM인베스트먼트였다. 두 회사는 2014년 말 컨소시엄을 꾸려 현대상선의 액화천연가스(LNG) 운송 부문을 인수했다. IMM컨소시엄은 현대상선 LNG 부문의 사명을 현대LNG해운(현대엘엔지해운)으로 바꾸고 현재까지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다.


당시 거래를 놓고 사모투자 업계와 해운업계에서는 "해운사를 인수했다는 관점보다는 장기 운송 계약에 투자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현대LNG해운이 화주와 체결한 계약이 길게는 10년 이상의 장기인데다, 운임 역시 계약 당시부터 사전에 협의한 만큼을 지불하게 돼 있어서다. 선박 발주나 용선 역시 계약이 선행돼야 이뤄지는 구조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앤컴퍼니가 한진해운의 벌크선 사업부를 인수하며 대세를 따랐다. 한진해운 자체는 빈사 상태였지만, 벌크선 부문은 그나마 안정적인 현금 흐름이 발생한 까닭에 매각이 가능한 자산으로 분류됐다. 한진해운은 벌크선 사업으로 3000억원을 벌어들였고, 이를 구조조정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한앤컴퍼니는 앞서 구조조정 매물로 나온 STX팬오션(현 팬오션)과 대한해운 인수전 참여 의사를 나타낼 정도로 벌크선 사업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신규 자본을 투입해 선박 도입 비용을 줄이고, PEF의 장기인 경영 효율화 작업을 완수한다면 우량 기업으로 거듭날 것이라는 게 한앤컴퍼니의 생각이었다. 한앤컴퍼니는 한진해운을 인수해 출범시킨 에이치라인해운을 경영하며 이같은 청사진을 현실화했고, 에이치라인해운을 국내 1위 벌크선사로 육성했다.


SK해운 M&A는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호재가 될 것이란 분석이다. 두 회사는 기본적으로는 각자 보유한 장기 계약에 기반한 운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주력할 전망이다. 하지만 선단에 여유가 생길 경우 특정 고객의 단기적 요구사항을 수행하는 이른바 '스팟 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 스팟 계약의 경우 장기 운송 계약에 비해 훨씬 높은 운임을 책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라 벌크선사의 실적에 '플러스 알파'로 작용한다.


안정적인 원가 구조와 업사이드 포텐셜(성장 잠재력)을 동시에 갖춘 벌크선사는 엑시트도 원활히 이뤄질 것이라는 게 IB업계의 전반적인 평가다. IB업계 관계자는 "앞서 시멘트 업계의 잇따른 M&A 사례에서도 나타났듯 선박 포트폴리오가 다양하고, 실적과 재무구조가 우량한 벌크사는 원매자를 찾기 어렵지 않아 보인다"며 "현금 흐름만 안정적이라면 배당이나 기업공개(IPO) 등을 통한 엑시트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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