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 코람코신탁 인수 무산된 배경은

[딜사이트 이상균 기자] 인수 대상으로 기관투자가 설정…이규성 회장, 매각 반대


우리은행이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코람코자산신탁 인수가 사실상 무산됐다. 한때 코람코자산신탁 인수전에서 가장 유력한 후보로 거론됐지만 복병 LF에 밀려 우선협상대상자 자리를 내줬다. 부동산 신탁업 진출을 노렸던 우리은행 입장에서는 향후 신규 신탁사를 인가받는 방안이 남아있긴 하지만 경쟁이 워낙 치열해 인가를 장담할 수 없는 처지다. 신탁업계에서는 우리은행이 코람코자산신탁의 지분 인수 대상을 잘못 설정하면서 인수 실패로 이어진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전 금감원장 대동한 우리은행에 매각 거부 의사 밝혀


LF가 인수할 예정인 코람코자산신탁의 지분은 총 46%다. 경영권을 보유한 이규성 회장(5.7%)과 소액주주(38.8%) 등으로 구성됐다. 이 회장은 소액주주로부터 지분을 넘겨받아 몸집을 불린 뒤 한꺼번에 인수 희망업체에 넘기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소액주주의 반발이 심해 실패했다. 대신 코람코자산신탁에서 퇴사한 직원들의 우리사주를 넘겨받아 최근 1년간 지분율을 5%에서 5.7%로 늘렸다.



반면 우리은행은 지분 인수 대상을 소액주주가 아닌 기관투자가들로 설정했다. 자신들의 지분(12.2%)에 산업은행(11.7%), 키움증권(9.9%), 코리안리재보험(9.7%), 신한은행(7%) 등을 합칠 경우 지분율은 50.5%가 된다. 경영권 행사가 충분히 가능한 수준이다. 여기에 이 회장의 지분(5.7%)까지 넘겨받는 방안을 추진했다.


우리은행은 이 회장과 만나 매각 의사를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탁업계 관계자는 “올해 우리은행 고위 관계자가 전(前) 금융감독원장을 대동해 이 회장을 만났다고 한다”며 “이 자리에서 이 회장에게 코람코자산신탁 경영권을 매각할 의사가 있는지를 물었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이 회장은 매각 의사가 전혀 없다며 강력한 거부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며 “이 회장의 의사가 워낙 완고해 전 금융감독원장이 난감해 할 정도로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이 회장, 소액주주 지분 매각에만 관심
이 회장이 속내와 달리 매각 의사가 전혀 없다고 부인한 이유는 무엇일까. 코람코자산신탁의 특수한 지배구조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회장이 5%대의 낮은 지분율로도 경영권 행사가 가능했던 것은 소액주주 협의회의 강력한 지지 덕분이다. 이 회장의 지인으로 구성된 소액주주 협의회의 지분율은 40%에 육박한다. 소액주주 협의회는 이 회장과 손을 잡으면서 사실상 회사 경영을 좌지우지 하는 최대주주 역할을 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은행이 기관투자가 지분을 인수해 최대주주 지위를 확보할 경우 소액주주 협의회는 경영권을 잃게 된다. 그동안 백기사 역할을 톡톡해 해준 소액주주 협의회와 특수관계인으로 엮여 있는 이 회장 입장에서는 이를 방관할 수 없게 된다. 이 회장이 우리은행에게 지분 매각 계획이 전혀 없다고 단언한 이유다.


신탁업계 관계자는 “이 회장은 애초부터 지분 매각 대상을 기관투자가가 아닌 소액주주로 설정해 협상을 진행했다”며 “우리은행의 코람코자산신탁 인수 전략이 애초부터 잘못 설정된 게 아니냐는 말이 업계에서 나왔다”고 말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부동산 신탁업 진출을 검토하긴 했지만 특정 업체를 만나 인수를 제의한 적은 없다”며 “지주사 설립 이전에는 M&A 혹은 계열사 신규 설립도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상균 기자 philip168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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