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구본천과 김동준의 차이
오너가 출신 공통점, 경영능력부터 입증해야
이 기사는 2024년 05월 07일 08시 59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딜사이트 이상균 IB부장] 예전부터 벤처캐피탈(VC) 업계의 특징 중 하나는 과거 재벌, 지금은 대규모 기업집단이라 불리는 곳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이다. 애시당초 자산 5조원 이상의 기업집단은 VC 창업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VC의 모회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코스닥 상장사 혹은 개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최근 들어 대기업도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탈(CVC) 설립이 가능해지긴 했지만 아직은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


다만 아주 예외적인 사례가 하나 있긴 하다. LB인베스트먼트의 구본천 부회장이다. LG그룹 창업주 구인회 회장의 손자인 구본천 부회장은 1964년생으로 재벌가에서 거들떠보지도 않는 VC업계에 투신해 회사 운용자산(AUM)을 2023년 기준 1조2430억원까지 키운 인물이다. LB인베스트먼트는 2023년 코스닥 시장 상장에도 성공했다.


재벌가 출신으로 범LG가의 지원이 상당했다는 지적이 있긴 하지만 구 부회장의 개인적 역량을 높이 평가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구 부회장의 개인적인 성향이나 성격 역시 재벌가 출신의 도련님보다는 창업주에 가깝다는 평가가 많다.


* 출처/벤처캐피탈협회

실제로 그는 회사를 키워나가는 와중에 VC업계 관계자들과 어울리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고 소탈한 행보로 주변 관계자들의 호평을 얻어왔다. 주요 유한책임투자자(LP)들을 대상으로 직접 프레젠테이션(PT)을 하며 펀드레이징에 나서기도 했다. 구 부회장의 헌신 덕분에 LB그룹은 주력 계열사인 LB인베스트먼트를 비롯, LB PE, LB자산운용, LB리캠, LB휴넷, LB세미콘 등을 거느린 중견그룹사로 성장했다.


최근에는 구본천 부회장과 비슷한 인생 출발점을 보이는 인물이 업계에 한 명 더 존재한다. 김익래 다우키움그룹 회장의 장남인 김동준 키움인베스트먼트 대표 겸 키움PE 대표다. 1984년생으로 구 부회장과는 20년 터울이다. 2009년부터 삼일회계법인에서 근무하다 2011년 그룹 계열사인 사람인HR을 거쳐 2014년 다우기술 사업기획팀 차장으로 입사하면서 다우키움그룹에 합류했다. 이후 이머니, 다우기술, 다우데이타 등을 거쳐 2018년 3월 키움인베스트먼트 대표이사에 올랐다.


김 대표가 VC 대표직을 역임한지 6년이 다돼가지만 업계에서조차 그와 접촉했던 이들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VC협회가 주최하는 CEO들의 공식적인 모임은 물론, 사적인 자리에도 얼굴을 내비치지 않는다. 외부 LP를 만나 펀드레이징을 하는 과정에서도 김 대표는 얼굴을 내비치는 일이 전혀 없다. 그렇다고 그룹 계열사의 도움을 마다하는 것도 아니다. 키움인베스트먼트의 주요 펀드는 어느새 키움 계열사의 출자 비중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김 대표의 정중동 행보가 철저히 아버지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익래 회장이 1950년생으로 현업에서 왕성한 활동을 보이기에 아직 후계자를 공식화하기에는 이르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지난해 5월 김익래 회장이 주가조작 세력과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으며 사퇴하는 등 오너 리스크가 불거졌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무시할 수 없는 아버지의 존재라는 한계점이 존재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김 대표를 마냥 동정만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그가 경영을 책임지는 키움인베스트먼트만 보더라도 겉으로 보이는 실적은 나쁘지 않아 보이지만 이는 그룹의 지원을 받아 AUM을 늘리면서 관리보수가 증가한 덕분이다. 여타 VC들이 수백억원의 성과보수를 챙기는 와중에 키움인베스트먼트는 20억원도 채 되지 않는다. 김 대표의 재임시기가 6년이 넘었다는 점에서 시간이 부족했다고 변명할 수도 없다.


구 부회장은 사뭇 달랐다. 범LG가라는 안락한 환경을 뒤로 하고 자신이 스스로 VC업계를 개척한 끝에 홀로서기에 성공했다. 김 대표가 수십년 뒤 키움 오너의 아들이라는 알껍질을 어떻게 깨고 비상할 수 있을지가 사뭇 궁금해진다. 구본천이라는 성공의 길을 갈지, 아님 반대의 길을 가게 될지.

ⓒ새로운 눈으로 시장을 바라봅니다. 딜사이트 무단전재 배포금지

관련종목
관련기사
데스크칼럼 357건의 기사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