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김가영 기자] 메모리 반도체 낸드플래시 2위인 일본 키옥시아(옛 도시바메모리)와 4위 미국 웨스턴디지털(WD)의 합병이 추진됐지만 SK하이닉스가 동의하지 않아 논의가 중단됐다. 다만 SK하이닉스는 향후 조건에 부합한다면 합병에 동의하겠다는 가능성을 열어놨다. 

27일 외신에 따르면 WD는 키옥시아에 협상 중단을 통보했다. 앞서 키옥시아와 WD의 합병은 지난 2021년 처음 추진됐다. 지금까지 각 사의 지분가치 측정에서 의견이 달라 합병이 지지부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낸드플래시 시장이 침체되면서 양사가 협력을 결정하며 합병에 속도가 붙었다.

양 사는 WD이 반도체 메모리 사업을 분리해 키옥시아홀딩스와 지주회사를 설립해 경영을 통합하는 방안을 협상해 왔다. 합병 법인 지분은 키옥시아가 49.5%, WD가 50.5%를 가져갈 것으로 전망됐다. 이를 위해 키옥시아는 미쓰이스미토모 등 일본 주요 은행에 2조엔(약 18조원) 규모 대출을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키옥시아와 WD는 합작사 설립 후 기업공개(IPO)를 통해 자금을 회수할 계획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번에는 키옥시아에 간접 출자한 SK하이닉스가 동의해주지 않아 협상이 진행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키옥시아 최대 주주는 베인캐피털 등이 참여한 한·미·일 연합 컨소시엄이다. SK하이닉스 역시 2018년 이 컨소시엄에 약 4조원을 투자했다. 펀드로 2조7000억원, 보통주 전환이 가능한 전환사채(CB) 1조3000억원을 확보한 것으로 파악된다. 전환사채의 보통주 전환을 가정했을 때 SK하이닉스의 키옥시아 지분율은 15% 정도인 것으로 추정된다.

SK하이닉스가 무슨 이유에서 합병을 반대표를 던졌는지에 대해 명확한 이유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합병 시 SK하이닉스가 키옥시아에 투자한 자산 가치에 변동이 생길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로 SK하이닉스는 전날 3분기 실적발표회에서 WD와 키옥시아의 합병 협상에 대해 "당사가 키옥시아에 투자한 자산 가치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해당 건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SK하이닉스가 양 사 합병에 대한 의견을 공식적으로 내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양 사 합병을 완전히 반대한다기보다는 SK하이닉스에 유리한 조건을 확보할 경우 동의할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점쳐진다.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은 같은 날 양 사 합병에 대해 "'합병을 반대한다'라는 표현을 쓴 적은 없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리고 "더 좋은 방안이나 새로운 대안이 있다면 충분히 같이 고민하고 논의해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어 "키옥시아 투자 자산을 갖고 있기 때문에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아직 동의를 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앞서 업계에서는 키옥시아와 WD가 합병할 경우 낸드 시장에 지각변동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 키옥시아의 낸드 시장 점유율은 21.5%, WD는 15.2% 였다. 둘이 합병할 경우 점유율은 36%를 넘어서면서 1위인 삼성전자(34%) 점유율보다도 높아지는 셈이다.

그러나 이번에 합병이 무산되면서 언제 다시 논의가 진행될지는 알 수 없게 됐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향후 키옥시아와의 연계를 염두에 두는 SK하이닉스는 이번 통합으로 WD의 주도권 강화를 우려했다"며 "이번 협상에는 경제 안전 보장 측면에서 미국과 일본 양국 정부도 깊이 관여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