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최지웅 기자]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신설하고 있는 삼성전자에 불안 요소가 쌓이고 있다. 조 단위의 자금 지원을 약속했던 미국 정부가 남일 대하듯 수수방관하고 있어서다. 삼성전자는 미국 현지에서 신속한 자금 지원을 독려하는 행사를 열며 미국 정부에 우회적으로 압박을 가하고 있지만 미래는 불투명하다. 

5일 재계와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미국 법인은 지난달 미국 워싱턴DC에서 여야 상·하원의원을 초청해 반도체 산업의 영향을 발표하는 리셉션을 열었다. 행사에는 마크 켈리 상원의원(민주당)과 마이클 매콜(공화당), 라자 크리슈나무르티(민주당) 하원의원 등이 참석했다. 이날 행사는 반도체 산업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자리였으나 실상은 미국 정부에 약속한 지원금을 적기에 지급해달라고 촉구하기 위해 마련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미국 정부는 지난해 8월 '반도체 지원법'을 도입하면서 자국 내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527억달러(약 69조원)의 자금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삼성전자는 미국 정부의 지원을 기대하고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170억달러(약 22조원)을 투자해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다.

미국 정부는 반도체 설비투자액의 5~15% 수준을 지원금으로 지급할 계획이다. 삼성전자가 테일러 파운리 공장에 투자한 금액을 고려하면 최대 25억5000만달러(약 3조3500억원)의 지원금을 받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반도체 지원법이 시행된 지 1년이 훌쩍 지났지만 지원금 지급 여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반도체 지원법은 반도체 기업들의 미국 내 투자를 장려하기 위해 도입됐다. 미국 정부는 우리 돈으로 69조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지원금을 앞세워 삼성전자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투자를 이끌었다. 현재 미국 상무부에 지원금을 받기 위한 투자 의향서를 제출한 기업은 460여개에 이른다. 상당히 많은 기업들이 지원금 받기를 희망하면서 지급 시기는 연말로 미뤄졌다. 예고한 기한이 다가왔지만 아직까지 지원금을 공식적으로 확정받은 기업은 나오지 않고 있다. 

미국 정부만 믿고 미국 내 생산기지를 구축한 삼성전자 입장에선 속이 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상황은 삼성전자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는 자국 기업들이 더 많은 지원금을 가져가야 한다는 여론이 조성되고 있다. 미국 정부도 이에 발맞춰 자국 기업들이 수혜를 입을 수 있는 방안을 고심 중이다. 당장 인텔이 군사용 반도체를 생산하는 보안 시설을 짓는 과정에서 미국 정부로부터 최대 40억달러(약 5조3000억원)에 달하는 지원금을 받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약속한 전체 보조금의 8%에 가까운 금액이다. 이것이 현실화될 경우 반도체 지원법의 예산 규모가 줄거나 지원금 지급 시기가 뒤로 밀려날 수 있다. 

이 같은 불안 요소가 쌓이면서 삼성전자의 반도체 생산기지 확장에도 차질이 우려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연내 테일러시에 파운드리 공장 1라인을 완공할 예정이다. 텍사스주 오스틴 공장에 이어 삼성전자가 미국에 짓는 두 번째 파운드리 거점이다. 향후 2라인을 건립해 생산능력을 끌어올릴 계획이지만 미국 정부의 약속 불이행으로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미국이 전시 상황인 이스라엘, 우크라이나 등에 퍼붓고 있는 돈이 어마어마하다"며 "재정적 불안요소가 크다 보니 삼성전자를 비롯해 다른 기업들에게도 약속한 지원금 지급을 미루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