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김수정 기자] SK온 이사회 내 SK하이닉스 출신들의 존재감이 커지고 있다. '반도체 전문가'로 꼽히는 이석희 대표가 SK온 CEO를 맡게 된 데 이어, 새 이사회 멤버로 SK하이닉스 출신의 최근민 CPO(최고생산책임자)가 추대됐다. 배터리 업계에선 SK그룹이 '반도체 제조 혁신 DNA'를 배터리 사업에 그대로 이식하기 위한 작업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8일 SK온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임원인사에서 이석희 대표가 신임 CEO로 취임하면서 이사회 구성원에 변화를 줬다. 

사내이사 자리는 기존과 동일한 총 5석이며, 이석희 사장과 최근민 부사장이 새로 등기됐다. 두 사람 모두 배터리 사업과 거리가 먼 SK하이닉스 출신이다. 배터리 업계에선 최 부사장에 대한 정보가 극히 적은데, 이같은 이력 때문이다. 이석희 사장은 11년 간 인텔에서 근무하다 2013년 SK하이닉스에 영입돼 작년까지 재직했으며, 최근민 부사장 역시 SK하이닉스와 SK실트론 등에 몸담고 있다, 2022년 SK온에 합류했다.

반면 출범 초기 중심축을 담당했던 SK이노베이션 출신 사내이사는 전무한 상태다. 이사회만 볼 때 SK온이 SK이노베이션 자회사라는 색채가 옅어졌는데, 배터리 업계에선 이런 SK하이닉스 출신의 약진을 유의미하게 보고 있다. 

SK온은 배터리 업계 후발주자이나, 성장세는 형님들 못지 않다. 고유의 고에너지밀도와 고출력 기술을 바탕으로 현대차그룹, 메르세데스-벤츠 그룹, 포드 등 국내외 완성차 업체를 고객사로 끌어들여 작년 3분기만에 매출 10조원을 달성했다. 그러나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하는 비효율적인 비용 구조는 고질적인 문제로 꼽혀왔다. 배터리 기술은 검증됐으나, 생산·제조 경쟁력이 따라와 주지 못해 만년 적자를 탈출하지 못한 것이다. 

대표적으로 경쟁사 대비 낮은 수율(투입량 대비 완성된 양품의 비율)이 꼬리표 처럼 따라붙고 있다. SK온의 수율은 90% 수준으로, 10개를 만들면 1개가 불량품이란 얘기다. 이전 대비 수율이 크게 개선됐지만 여전히 적자를 면치 못했다. 

SK하이닉스는 그룹 내 제조 역량을 갖춘 유일한 계열사다. '수율 극대화·생산성 극대화·품질 제로' 3박자를 모두 갖춘 곳으로, 버리는 칩의 비율을 낮춰 수익을 극대화하는 데에 타고 났다. SK하이닉스 출신을 선호하는데에는 이런 배경이 주효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특히 SK하이닉스 역시 SK그룹에 편입되기 직전에는 적자였다. 수익성 중심으로 판매 구조를 개선하고, 생산성을 높일 수 있도록 공정을 개선하는 등의 원가 혁신으로 2013년 턴어라운드에 성공했다. SK하이닉스의 이런 혁신 노하우가 SK온에 그대로 적용될 것으로 관측된다.

최근 현대차 등 완성차 업체들이 배터리 기술 내재화에 나서면서 위탁 생산 체제에 대한 대비가 필요한데, 위탁 생산 기술력에선 반도체 업체들이 앞서있다. SK하이닉스의 기술력을 벤치마킹하면 손쉽게 SK온만의 위탁 생산 체제를 구축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이 업계의 전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배터리와 반도체가 언뜻 보면 전혀 다른 것 같지만, 제조 기반으로 한다는 속성은 유사하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이 반도체 강국인 이유는 대량으로 생산해 적기에 전 세계에 출하하는 능력이 출중하기 때문이다"며 "반도체 잘 하는 기업이 배터리도 잘 한다'라는 인식을 시장에 심는 것이 이번 이사회 변화의 이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