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김수정 기자] OCI그룹이 한미사이언스와 혈맹을 맺은 것을 두고 재계에서는 고려아연과 유사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신사업을 키우기 위한 과감한 결단이란 표면적 이유를 내세우지만, 지배력을 염두에 둔 우군 포섭이라는 이유에서다. 회사를 이끄는 경영진과 최대주주가 따로 있다는 점, 소재 회사와 이종 사업 간 협력이란 점 등도 공통점으로 거론되고 있다.

OCI홀딩스는 오는 6월 말 한미약품그룹 오너가와 주식 스왑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계략적으로 OCI홀딩스는 송영숙 회장과 임주현 사장이 보유한 한미사이언스 주식 677만6305주를 받는 대신 자사 신주 229만1532주주를 두 사람에게 각각 교부하는 형태다. 이러한 통합 구조는 앞서 대기업들과 합종연횡을 꾀한 고려아연과 다르지 않다.

고려아연은 이차전지 소재, 신재생 에너지 등 신사업 관련 노하우가 부족하다고 판단, 이종 산업과 합종을 꾀했다. 구체적으로 ▲현대차, LG화학 등과는 전기차 배터리 등 이차전지 소재 ▲㈜한화와는 수소 밸류체인과 탄소 포집 등 친환경 사업에서 힘을 모으기로 결정하고 지분을 스왑했다. 그 결과 고려아연은 LG화학 주식을 1% 받는 대신 자사 지분을 2% 내줬고, ㈜한화에서는 7%를 주고 5.9%를 받았다. 아울러 현대차의 경우 제3자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해 고려아연 지분을 5% 보유 중이다.

OCI홀딩스나 고려아연이나 지분 스왑에 나섰던 이유는 경영권 분쟁을 막아줄 우군을 포섭하기 위함이란 것이 재계의 시각이다. 두 회사 모두 오너 일가의 지배력이 약한 까닭이다. 

우선 고려아연부터 보면 이 회사를 이끄는 인물은 최씨 일가 장손인 최윤범 회장이지만, 어머니 등 가족들이 보유한 지분을 모두 끌어모아도 15.4%에 그친다. 그러나 지분 스왑으로 연대를 구축한 회사들의 지분까지 더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최 회장 등의 지분율이 우호지분을 포함해 33%에 달해 경영권을 위협하는 영풍 장씨 일가(32%)를 소폭 앞서기 때문이다.

OCI그룹도 다르지 않다. 이 회사 이우현 회장보다 삼촌들이 더 많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고려아연처럼 경쟁적으로 지분을 매집하며 공공연하게 불편한 속내를 드러내지 않지만, 잠재적 위험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게 재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삼촌과 조카 사이가 아직까지는 좋다 해도 언제든 상황이 바뀔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6월 말 예정대로 OCI홀딩스가 한미사이언스에 신주를 발행하면 이우현 회장의 이 회사 지분율은 5.9%로 종전(6.6%) 대비 0.7%포인트 희석된다. 반면 송영숙 회장과 임주현 사장이 OCI홀딩스의 지분을 10.4% 확보하게 되고, 이 회장의 삼촌인 이복영 SGC그룹 회장과 이화영 유니드 회장은 13.3%를 확보하게 된다. 다시 말해 이우현 회장 입장에선 송영숙 회장 등과 힘을 합칠 경우 삼촌들을 견제할 수 있고, 반대로 손을 잡을 경우 OCI홀딩스의 개인 최대주주로 올라서는 임주현 사장(8.6%) 폭주를 막을 수도 있게 된다. 더불어 OCI홀딩스와 한미사이언스 오너 일가가 힘을 합칠 경우 지분율이 29.6%에 육박해 지난해 크게 활성화 됐던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공격에도 한층 자유로워질 수 있는 구조를 만든 셈이다.

재계 한 관계자도 "최윤범 회장이 ㈜한화 등 우군을 확보한 이후 고려아연만 영풍그룹에서 계열분리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는 소문이 도는 등 과거 눈치를 보던 시절과 많이 달라졌다"며 "이우현 회장 역시 삼촌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지만, 한미사이언스와 지분 스왑이 끝나고 나면 보다 경영보폭을 넓힐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