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뉴딜정책과 벤처생태계
'정부→민간주도형'으로 벤처생태계 탈바꿈 적기

[팍스넷뉴스 이승호 대표] 정부가 침체된 경제를 살리기 위해 지난달 한국판 뉴딜정책을 발표했다. 산업계와 금융계, 벤처업계 등이 동참 선언으로 즉각 화답하고 나섰다. 한국판 뉴딜 사업은 2025년까지 총 114조1000억원의 국가예산을 투입하는 대규모 사업이다. 지방비와 민간사업비까지 더할 경우 160조원까지 늘어나 사상 최대 규모 사업이 된다. 이를 통해 190만개 이상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고 정부는 강조하고 있다. 


정부가 바라보는 우리 경제에 대한 진단은 이렇다. 우리나라 경제가 성숙단계로 진입하면서 성장추세가 현저히 낮아지고 있고, 사회안전망이 미흡해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는 판단이다. 전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충격 여파로 가파른 경기침체를 돌려세울 돌파구도 필요했을 것이다.


이미 정상궤도에서 벗어난 우리 경제의 빠른 회복을 위해 한국판 뉴딜정책의 필요성에 대해 경제 전문가들도 대체로 공감하는 분위기다.


한국판 뉴딜정책이 발표된 후 가장 먼저 기민하게 움직인 곳은 금융권이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뉴딜 핵심 사업은 대부분 혁신적 도전과 대규모 자금이 필요한 만큼 금융시스템의 기능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나섰다.


금융지주사들도 관련 대책을 내놓고 있다. KB금융은 KB뉴딜‧혁신금융협의회를 통해 그룹차원의 '한국판 뉴딜' 사업 지원체계를 구축하겠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윤종규 KB금융 회장이 직접 'KB혁신금융협의회'의 의장을 맡아 은행·증권·벤처캐피탈 등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CEO)와 임원들을 독려하고 있다.


신한금융은 산업과 금융이 결합된 새로운 생태계 조성을 목표로 '신한 네오 프로젝트'를 가동, 디지털 스타트업 발굴에 나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당장 유동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두산그룹 계열의 벤처캐피털 네오플럭스를 인수, 본격적인 벤처생태계 지원에 나서겠다는 적극적 의지도 내비치고 있다.  


하나금융그룹은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탈(CVC)인 하나벤처스를 통해 스타트업에 대한 지분투자를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하나금융투자를 통한 기업공개(IPO)를 지원하고, 하나은행은 벤처기업에 대한 자금 공급을 보다 늘릴 방침이다. 우리은행과 IBK기업은행 등도 전문 컨설턴트의 컨설팅과 후속투자 유치를 지원 예정이다. 이외 공유오피스 형태의 사무공간 지원과 법률‧IP‧세무‧회계 등 다양한 지원책이 쏟아지고 있다. 


벤처생태계 종사자들은 '세상이 달라졌다'며 변화된 환경을 반색하고 있다. 가장 보수적이던 금융업계의 이같은 선제적 노력을 두 팔 벌려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국내 벤처생태계는 그동안 정부 주도형으로 진행돼 왔다. 1990년대 창업지원법과 신기술금융지원법 등으로 시작된 정부의 벤처지원정책은 김대중 정부 시절 정보통신(IT)업계를 중심으로 한 '벤처 붐'으로 확산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시절 벤처생태계는 일시적으로 주춤했다. 이후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펼친 창조경제(creative economy) 아젠다를 필두로 한 벤처기업 및 창업에 대한 전방위적 정책 노력에 힘입어 벤처업계는 꽃을 활짝 피웠다. 문재인 정부는 창업지원정책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중소기업청을 중소기업벤처부로 승격시켰다. 일자리창출의 일환으로 벤처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중기부(중기청)를 중심으로 한 한국벤처투자(모태펀드), 금융위원회 산하 산업은행과 한국성장금융, 여기에 문화체육관광부와 환경부, 특허청 등이 벤처생태계 조성을 위해 주된 자금 공급원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정부 주도형 정책자금이 벤처생태계를 조성하고 발전시켜 나가고 있는 셈이다.


정부 주도형 벤처 정책이 잘못됐다는 얘기는 아니다. '창조경제'에서 '혁신성장'으로 다시 '한국판 뉴딜'로 간판을 바꾸고 있는 정부 주도형 벤처 정책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느냐는 의구심이 있을 뿐이다. 수조원, 수십조원 등 보여주기식 숫자 놀음보다는 이제는 보다 건강한 벤처생태계를 향한 업그레이드된 정책적 전환에 나설 때가 됐다.    


그동안 정부의 주된 활동은 벤처생태계를 위한 마중물을 적극 공급하는 역할에 치중해왔다. 물론 성공적이라는 후한 점수를 줄 수 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순수 민간 자금이 그 역할을 대신할 시기가 됐다.  


이를 위해 정부는 민간에 과감한 인센티브를 제공해야만 한다. 영업이익을 많이 내는 일반기업이 벤처기업과 스타트업에 투자할 경우 일정 수준 이상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정비할 때다. 금융기관이 벤처펀드에 출자할 경우 위험가중치를 투자금액의 현행 400%로 부과하는 은행업감독업무시행세칙도 과감하게 개정할 필요가 있다. 위험가중자산은 금융기관이 가장 민감하게 여기는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투자기업을 공정가치로 평가를 할 수 있도록 국제회계기준(IFRS9)도 역시 개정해야만 한다.


한국판 뉴딜정책은 우리나라 미래성장동력인 벤처생태계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자칫 관치금융의 실험대상으로 그치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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