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강동원 기자] 올 1분기 유상증자 시장을 찾는 기업들의 발걸음이 예년에 비해 뜸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시장 불안으로 기업들이 자금조달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면서 증자 건수와 규모가 대폭 줄었다. 기업공개(IPO) 시장이 중소형 기업을 중심으로 활기를 띠는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증권사들 역시 딜(Deal) 가뭄에 시달리는 가운데, 유안타증권과 하이투자증권이 오랜만에 실적 순위에 이름을 올렸다.

4일 '2023년 1분기 딜사이트 자본시장 리그테이블'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증권사들의 유상증자 대표주관 건수(증권발행실적 보고서 공시 기준)는 9건, 주관 금액은 1조3456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각각 47%, 38% 줄었다. 롯데케미칼이 조 단위 자금을 조달하면서 포문을 열었지만, 다수 기업은 시장 분위기를 관망했다.

증권사들의 1분기 유상증자 대표주관 실적은 롯데케미칼 유증 참여로 결정됐다. 롯데케미칼은 일진머티리얼즈 인수자금(6050억원)·운영자금(6105억원)으로 총 1조2155억원(주당 14만3000원)을 조달했다. 공동 대표 주관사인 ▲NH투자증권 ▲KB증권 ▲하나증권 ▲유안타증권 ▲신한투자증권 ▲삼성증권 ▲미래에셋증권은 실적 1736억원씩을 쌓으며 공동 1위를 차지했다.

대표주관 실적은 사이좋게 나눠 가졌으나 인수수수료 수익에서는 배정 물량에 따른 차이가 있었다. 가장 많은 금액(1973억원)을 배정받은 삼성증권과 KB증권이 7억8900만원씩을 받았다. 이어 유안타증권이 7억7000만원, NH투자증권과 신한투자증권이 각각 5억8000만원, 5억5000만원의 수수료를 거뒀다.

롯데케미칼 유상증자에서 도드라지는 점은 지난 2015년(범양건영) 이후 유상증자 대표주관 경쟁에서 존재감이 없었던 유안타증권이 재등장한 것이다. 유안타증권은 딜 수임을 위해 주요 경영진들이 직접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증권 출신 이재성 팀장이 이끄는 ECM3팀 역시 주관 업무 수행에 만전을 기했다는 후문이다.

유상증자 대표주관 실적 8위는 한국투자증권이 차지했다. 한투증권은 대형 증권사 중 유일하게 롯데케미칼 유상증자 주관사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으나 제넥신(852억원, 주당 1만4700원) 딜로 실적을 쌓았다. 제넥신은 운영자금 1000억원(주당 1만7250원)을 조달할 예정이었으나 유증 계획 발표 뒤 주가가 하락하면서 신주 발행가액이 낮아졌다.

9위는 하이투자증권이 올랐다. 하이투자증권은 지난해 유증 대표주관 실적이 0건이었으나 엘브이엠씨(449억원) 유상증자로 실적 경쟁에 참전했다. 비록 엘브이엠씨도 자금조달 계획 발표 뒤 주가가 하락하면서 신주 발행가액이 조정(2045원→1950원), 증자 규모가 줄었지만, 구주주 청약률 106.91%를 기록하며 관심 받았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시간이 흐를수록 유동성에 위기를 느낀 기업들이 유상증자 시장에 발 들이는 사례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기업들이 허리띠를 졸라매며 시장 분위기를 관망했으나 지금과 같이 이자 비용 부담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유상증자가 대규모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해 들어 공모뿐 아니라 사모 유상증자(주주배정 등)에 나선 기업 다수는 자금조달 목표를 운영자금과 채무상환 자금 확보로 삼았다. 공모 일정을 진행하고 있는 젠큐릭스(한투증권, 198억원), 자비스(KB증권, 122억원)도 마찬가지다. 주가 하락과 실권주 등 변수로 증자 규모가 줄어들 수 있지만, 생존을 위해 위험을 감내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