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박민규 기자] 롯데케미칼의 파키스탄 고순도 테레프탈산(PTA) 사업 자회사 롯데케미칼파키스탄리미티드(LCPL) 매각이 또다시 무산되며 사실상 전면 재검토 수순에 들어갔다. 시장에서는 파키스탄 정부가 외환 유출을 억제 중인 만큼 현지 기업보다 제3국 업체와 LCPL 재매각을 타진해야 할 것으로 분석한다.

17일 롯데케미칼에 따르면 LCPL 지분 75.01%를 약 1924억원에 매입하기로 한 파키스탄 화학사 럭키코어인더스트리가 이달 15일 주식매매계약(SPA)을 파기했다. 계약에 규정된 기한 내 주식 공개매수가 이뤄져야 했으나, 기업 결합 승인 등 선행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LCPL 매각 협상은 이미 한 차례 결렬된 전례가 있다. 롯데케미칼은 2022년 하반기부터 파키스탄 노바텍스사와 협의해 왔다, 하지만 거래 조건에 대한 이견이 발생하면서 작년 1월 노바텍스가 인수 의사를 철회했다. 이후 나타난 원매자가 이번에 계약을 파기한 럭키코어다.

롯데케미칼 관계자는 "파키스탄 공정거래위원회(CCP)가 이번 인수 합병(M&A)을 허가하지 않는 이유를 밝힐 수 없다"면서도 "외환 반출이 어렵다고 들었다"고 귀띔했다. 아울러 이 회사에 정통한 관계자도 "과도 정부가 들어서면서 M&A를 까다롭게 심사한 탓에 딜(Deal)이 무산됐다"며 파키스탄 금융당국에서 외환 유출을 우려해 LCPL의 계약을 파기시킨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파키스탄은 2022년 초유의 총리 축출 사태 이후 군부와 반대 세력 간 대립이 심화되는 등 혼란한 정국이 계속되고 있다. 더불어 지난해 가파른 물가 상승과 외환보유고가 바닥이 나면서 경제도 파탄 난 상황이다. 정부가 반대하는 거래인 데다가 인수 대상의 경영 성과도 좋지 않다 보니 럭키코어 역시 계약을 파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란 게 업계의 중론이다. 실제 LCPL의 총이익은 작년 3분기 기준 34억1700만루피(한화 약 549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20% 가량 감소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매각 무산에 '반롯데' 중국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파키스탄은 친중 국가라는 이유에서다. 게다가 중국에게 있어 파키스탄은 '일대일로(중앙 아시아를 거쳐 유럽까지 육해상 경제 권역을 연결하는 프로젝트)' 프로젝트를 완수하기 위한 전략적 거점이다. 다시 말해 롯데케미칼이 2017년 한국 정부에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THAAD) 부지를 제공한 롯데 계열사이기에 중국에서 파키스탄을 압박해 이번 딜을 무산시켰다는 것이다.

한편 롯데케미칼은 LCPL이 어쨌든 수익을 내고 있는 법인인 만큼 당분간 운영하며 다음 행보를 모색하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현지 기업에 LCPL을 매각하기는 힘들 것이란 게 시장의 중론이다. 파키스탄이 올해 신정부 출범으로 정치적으로는 안정화가 이뤄지겠지만, 경제 상황은 마이너스 성장(-0.3%)을 거듭하며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시장 한 관계자는 "테러 위협과 강추위 등으로 인해 다음달 8일 예정돼 있는 파키스탄 총선이 계획대로 치뤄질 수 있을지 물음표가 붙고 있기는 하지만 연내 정치적으로는 안정화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면서도 "(파키스탄) 국토의 3분의 1이 물에 잠긴 대홍수 여파가 지금껏 지속되고 있는 데다 섬유와 의류 제조 등이 수출의 65%를 차지할 만큼 대외 변수에 취약한 경제 구조를 가지고 있어 롯데케미칼이 현지 기업에 LCPL을 매각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