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찾아가는 벤처캐피탈
펀드운용 까다로운 지자체 자금 유치 집중…대형사 vs 중소형사 '양극화' 심화

[팍스넷뉴스 류석 기자] 최근 서울시 한 구청 회의실로 여러 벤처캐피탈이 모여들었다. 모인 곳들 면면을 보면 이제 막 회사 문을 연 곳 아니면 운용자산 규모 1000억원 미만 중소형 벤처캐피탈이었다. 업계 민원이라도 전달할 일이 있었던 걸까.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던 그들이 구청을 찾은 목적은 벤처펀드 출자금 모집이었다. 구 예산으로 수억원을 출자하겠다는 공고를 보고 한달음에 찾아온 것이다. 


벤처캐피탈 대표들이 두툼한 서류뭉치를 들고 구청, 도청 등 지방자치단체를 찾아다니는 풍경은 낯설지 않을 정도다. 지자체는 이미 중소형 벤처캐피탈들 사이에서 중요한 출자자(LP) 중 한 곳으로 인식되고 있는 듯하다. 관악구가 지난 5월 진행한 출자사업에서는 구청 담당자가 놀랄 정도로 많은 벤처캐피탈이 몰렸다고 한다. 구로구, 금천구 등도 직·간접적으로 여러 벤처펀드 LP로 나서고 있다. 전국적으로 보면 경상남도, 인천시, 제주시 등도 있다.


지자체 예산은 양날의 검과 같다. 공짜가 아니라는 뜻이다. 지자체들은 보통 출자한 금액의 약 200%를 레버리지로 요구한다. 5억원을 출자하면 최소 20억원은 지역 내 벤처캐피탈에 투자해야 하는 것이다. 이미 대규모 정책자금(정부 예산)으로 꽉꽉 채워져 있는 벤처펀드에 지자체 예산까지 더해지면 벤처캐피탈 입장에서는 더욱 펀드 운용이 까다로워질 수밖에 없다. 


펀드 최소 결성액을 채우기에 바쁜 중소형 벤처캐피탈들이 자금의 성격까지 따지는 것은 사치였던 걸까. 이달 만난 한 신생 벤처캐피탈 임원은 "지자체 아니면 요새 펀드 매칭 자금 받을 곳이 없다"라고 말하며 멋쩍게 웃어보였다.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것으로 이해가 됐다. 


혹자는 벤처투자 시장에 자금이 넘쳐난다고 말한다. 벤처투자 업계를 돌아다니다 보면 '호황기'라는 말을 자주 접한다. 벤처투자 시장 확대에 초점을 맞춘 정부 정책과 기대에 부응코자 하는 업계 구성원들의 노력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구성원 스스로가 업계 상황에 대해 좋은 평가를 내릴 정도면 통계나 수치로 나타나는 수준은 더욱 높을 것으로 짐작된다. 


실제로 몇몇 벤처캐피탈은 그동안 기록했던 최대 운용자산 기록을 계속해서 갈아치우고 있다. 한 대형 벤처캐피탈은 올해 전무후무한 약정총액 5000억원의 벤처펀드 결성을 구상하기도 했다. 5000억원은 웬만한 중소 규모 벤처캐피탈 두세 곳의 전체 운용자산을 합한 수준이다. 어떤 벤처캐피탈은 펀드 규모의 적정성을 고려해 민간 LP의 추가 출자 요구를 완곡하게 거절했다는 얘기도 들려온다. 


지금의 벤처투자 업계는 영화 '기생충' 속 박 사장 저택과 기택 가족의 반지하집을 떠오르게 한다. 상승세는 가파르지만 내부적으로 드리운 양극화 우려는 꽤 짙다. 벤처투자 산업이 건강한 성장을 이루려면 중소형 벤처캐피탈이 대형사로 올라서는 성장사다리가 끊어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 지자체에 모여있던 벤처캐피탈 대표들이 훗날 굴지의 금융사, 대기업 문턱을 가뿐히 넘는 시기가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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