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초' 철강업, 금 가기 시작한 유리천장
'구색 맞추기' 아닌 여성 리더 등용 적극 나서야
이 기사는 2021년 04월 06일 08시 07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팍스넷뉴스 유범종 기자] OECD 회원국 가운데 9년 연속 꼴찌.


국가별 '유리천장 지수(Glass ceiling Index)'에서 한국이 맞닥뜨린 얼굴이다.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9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2013년부터 해마다 유리천장 지수를 발표하는데 한국은 올해를 포함해 단 한번도 빼놓지 않고 최하위에 머무르는 불명예를 안았다.


유리천장 지수는 노동시장에서 남녀차별 정도를 파악하는 지수로 활용되며 여성 고위직과 사내 이사진 비율 등이 중점적인 평가항목이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200대 상장기업 등기임원 가운데 여성은 총 65명으로 4.9%에 그쳤고, 여성 관리자 비율은 15.4%로 OECD 평균인 33.2%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수치들은 국내 기업들 사이에 암묵적으로 존재하는 여성들에 대한 차별과 보이지 않는 장벽이 얼마나 두터운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이 가운데 전통적인 굴뚝산업인 철강은 위험한 작업환경과 엔지니어 중심의 인력 구성 특성상 특히나 여성들이 임원을 달기 어려운 대표적인 '남초' 산업으로 지목되어왔다. 실제 불과 2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국내 주요 철강기업 이사회 구성원 가운데 여성의 자리는 단 한 곳도 없었던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끝없이 높아 보였던 국내 철강업계의 유리천장도 최근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지난해 국회에서 여성 등기임원 선임을 의무화하는 법이 통과되면서다. 이 법의 통과로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상장기업은 이사회를 구성할 때 최소 여성 1명 이상을 포함해야만 한다. 해당 법은 내년 7월까지 2년의 유예기간을 가지고 8월부터 본격 시행될 예정이다.


국내 철강기업 가운데 자산총액 2조원 이상은 포스코, 현대제철, 동국제강, 세아베스틸, KG동부제철 등 5개사다. 이들 기업들은 벌써부터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세아베스틸은 지난해 3월 여성 사외이사 1명을 새로 발탁하며 국내 철강업계에서 가장 먼저 개정된 법의 조건을 충족했다. 이어 포스코와 현대제철도 지난달 이사회를 통해 각각 1명의 여성 사외이사를 선임하며 '남초' 이사회의 틀을 깼다. 나머지 해당 철강기업들도 늦어도 내년까지는 여성 등기임원을 찾을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하나 아쉬운 건 사외이사를 제외하고 실질적인 업무를 추진하는 사내임원으로 범위를 좁히면 여전히 여성의 등용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현재 해당 5개 철강기업의 미등기임원은 총 190명인데 여성임원은 포스코 3명이 유일하다. 전체 임원수의 채 2% 비중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철강업계 일각에서는 여성 사내임원을 발탁하려면 내부 승진이나 외부에서 영입해야 하는데 두 가지 조건 모두 쉽지 않다고 토로한다. 아직까지 임원 승진 대상자 가운데 여성 비중이 극히 제한적이다 보니 단기간에 여성임원이 나오기 쉽지 않은 구조라는 얘기다. 철강업에 대한 전문적인 이해를 가진 여성이 드물어 외부영입 가능성도 낮다고 항변한다.


최근 철강업의 경영방식은 과거와는 현저히 달라졌다. 주먹구구식의 전통적 제조방식을 고수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스마트화된 설비로 남성의 힘을 필요로 하는 조업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아울러 생산 중심에서 치열한 경쟁을 위한 마케팅이 부각되며 유연하고 섬세한 능력이 중용되기 시작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경영이 강조되며 철강 외적인 부문에 대한 관리도 중요해진 시점이다. 단순히 남녀차별을 떠나 철강업계도 여성이 강점을 가지고 추진할 수 있는 역할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말이다.


세계적인 해외 기업들을 보면 여성 리더의 활약은 갈수록 무르익고 있다. 국내 철강기업들도 단지 법 개정에 따른 '구색 맞추기' 사외이사 선임이 아닌 기업의 다양한 능력 발굴과 경쟁력 강화를 위한 여성 사내임원 등용에 적극 나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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