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기업이요? 은퇴합니다."
각종 규제+세계 최고 수준 상속세, 매각할 수밖에 없는 구조
이 기사는 2021년 08월 12일 07시 59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팍스넷뉴스 이호정 산업3부장] "대한민국에서 중소기업을 경영한다는 건 성공과 추락의 피 말리는 롤러코스터를 견뎌야하는 일이에요. 가족도, 나 자신도 버리고 오로지 일에만 파묻혀 살다가 결국 나처럼 불치병만 얻게 되기 십상이죠. 나조차도 살기 위해 버리려 한 그 길을 어떻게 자식들에게 가라고 합니까. 못 하죠. 안 되죠."


해피콜 창업주인 이현삼 회장은 최근 저서(농부 하는 중입니다) 출간을 기념해 중앙선데이와 가진 인터뷰에서 자녀들에게 회사를 물려주지 않은 이유에 대해 이 같이 밝혔다. 그는 2016년 이스트브릿지와 골드만삭스로부터 1800억원을 받는 조건으로 해피콜을 매각했다.


2017년, 락앤락 창업주 김준일 회장이 홍콩계 사모펀드운용사(PEF)인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에 회사를 매각한 이유도 다르지 않다. 그 역시 "자식에게 기업을 물려주는 건 큰 짐이 될 수 있다. 자식들이 행복할 수 있을지 생각한 끝에 매각을 결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두 창업자와 같은 결정은 보수적 색채가 짙은 유통가에선 흔치 않은 일이었다. 인간의 기본 욕구인 의식(衣食)을 책임지는 산업이다 보니 경기침체와 별개로 현금이 따박따박 유입되는 데다, 피땀으로 일군 회사를 제3자에게 넘긴다는 걸 정서적으로도 납득하지 못해서다.



하지만 올 들어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승계 대신 매각을 결정하는 유통기업이 크게 늘어난 것. 한샘, 남양유업, 크린토피아가 대표격이고, 중소벤처기업부의 M&A 거래정보망에 매물로 올라와 있는 식품, 가구, 외식(프랜차이즈), 화장품, 생활용품 회사도 94곳에 달한다.


PEF 업계 한 관계자도 "몇 년 전만 해도 회사 매각 얘기를 꺼내면 문전박대 당하기 일쑤였는데 최근에는 중견‧중소 유통기업 오너 혹은 창업주들이 PEF에 직접 매각을 타진해 오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인건비 부담과 각종 규제, 여기에 막대한 상속세까지 부담해야 하다 보니 자녀에게 굳이 회사를 물려줘야 한다는 인식이 희석된 결과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맞다. 한국은 전 세계적으로 봐도 기업을 하기 쉽지 않은 나라다. 반기업적 정서가 팽배한 데다 정책도 옥죄기 일색인 까닭이다. 아울러 독일보다는 10배, 일본에 비해선 5배 높은 상속세로 인해 사실상 정상적인 방법으론 가업승계를 하는 것도 어렵다.


실제 한국은 지분을 상속할 경우 50%를 상속세로 내야하고, 의결권이 있는 주식의 경우 30%의 가산세가 추가돼 상속세로만 지분 매매가의 65%를 내야 한다. 극단적으로 정리하면 1세대가 2세대에 1000억원어치의 지분을 넘기면 2세대는 650억원을 세금으로 내고 350억원을 쥐게 되고, 3세대에 가서는 세금(228억원)을 제하면 123억원만 남는다.


반면 PEF에 매각할 경우 양도차익 25%만 부담하면 된다. 중소 유통기업 오너 입장에선 세금 부담과 성장한계에 봉착해 피 말리는 경쟁을 해야 하는 자신의 자리 대신 자녀에게 현금을 챙겨주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 놓여있는 셈이다.


오죽하면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는'한국은 기업을 상속하는 것보다 PEF에 내놓는 것이 더 이득인 나라'라는 보고서를 냈고, 세계적 경제지인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도 '한국의 고율 상속세가 기업을 위협하고 있다'란 기사를 냈을까.


이러한 환경 속에선 100년 기업이나, 히든챔피언으로 부를 수 있는 곳이 나오기 어렵다. 한국경제에서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고용률(83.1%) 등을 고려하면 상속세율을 OECD 평균(26%) 수준으로 낮추거나, 독일과 같이 승계 후 고용 현황에 맞춰 감세 또는 면제해주는 방안이 필요한 시점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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