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범찬희 기자] 250조원을 넘어선 퇴직연금 시장에도 위탁운용 시대가 열리고 있다. 기업에 퇴직연금 운용권한이 있는 DB(확정급여)형이 시장을 주도하면서 OCIO(외부위탁운용관리) 개념을 적용한 공모펀드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OCIO란 WM(자산관리)을 전문으로 하는 운용사가 자산보유자의 자금을 위탁받아 운용을 대신해주는 서비스를 말한다. 주로 국민연금, 우정사업본부로 대표되는 연기금이나 공공기관과 같은 기관투자자의 자금을 도맡는다. OCIO 개별 사업당 규모가 조(兆)단위다 보니 금융투자업계에서는 미래 먹거리로 꼽힌다. 'OCIO의 꽃'으로 통하는 연기금투자풀의 경우만 하더라도 운용규모가 35조원에 이른다.

이러한 OCIO 개념이 퇴직연금 상품에도 적용되고 있다. 최근 DB형 퇴직연금에 OCIO 운용 전략을 가미한 'OCIO펀드' 출시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2월 KB자산운용이 국내 최초로 2종의 관련 상품(KB타겟리턴 안정형‧성장형 OCIO 펀드)을 선보인데 이어 미래에셋자산운용(미래에셋OCIO-DB표준형증권)과 한화자산운용(한화OCIO솔루션펀드)이 뒤를 이었다. 지난 27일에는 한국투자신탁운용이 '한국투자OCIO알아서펀드'로 경쟁 대열에 합류했다. AUM(총자산규모)기준 상위 6개 운용사 가운데 삼성과 신한을 제외한 4곳이 관련 라인업을 갖추게 된 셈이다.

이들 OCIO펀드는 펀드 오브 펀드로 운영되는 재간접형이라는 게 특징이다. 이는 액티브 펀드처럼 알파전략으로 초과수익을 추구하기 보다는 목표수익률 달성을 최우선하는 까닭이다. 실제 OCIO펀드별 PDF(자산구성내역)를 보면, KB타겟리턴 안정형은 ETF(상장지수펀드)를 포함한 펀드 비중이 85.42%에 이른다. 주식, 채권, 부동산 등 다양한 글로벌 자산에 투자하는 한화OCIO솔루션(A-e클라스 기준)도 'JPMorgan Ultra-Short Income ETF'(10.9%), 'iShares 0-5 Year TIPS Bond ETF'(5.16%)이 자산구성 탑5에 속해있다. 미래에셋OCIO-DB표준형증권도 집합투자증권(펀드)이 전체 자산의 26.98%를 차지한다.

이처럼 올해 들어 운용사들의 OCIO펀드 출시가 이어지고 있는 건 퇴직연금 시장이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의 '2020년 퇴직연금 적립금 운용현황 통계'에 따르면 국내 퇴직연금 총 적립금은 2017년 168조4000억원, 2018년 190조원, 2019년 221조2000억원, 2020년 255조5000억원으로 증가 추세다.

문제는 근로자 개인이 운용하는 DC(확정기여)형이 아닌 DB형이 퇴직연금 시장의 성장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적립금 가운데 60.2%(153조9000억원)가 DB형을 통해 이뤄졌다. 그럼에도 대다수 기업들은 마땅한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자금 대부분을 원리금보장상품에 투자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와 같이 퇴직부채(근로자 퇴직시 지급할 급여를 모은 자산)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을 기업들의 고민을 덜어주고자 운용사들이 OCIO펀드라는 대안을 내놓은 것이다.

이와 관련해 자산운용업계의 한 관계자는 "고령화와 저금리로 인해 국내 퇴직연금의 약 60%인 DB제도 운영주체인 기업 부담이 가중되고 있는 만큼 OCIO를 통한 전문성 확보와 운용수익률 개선 요구는 확대될 전망"이라며 "OCIO펀드는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의 선진화된 자산배분 기법과 운용 프로세스를 펀드 운용에 반영해 안정적 수익창출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기업 DB적립금 운용을 위한 훌륭한 선택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