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수빈 기자] SK하이닉스가 영국 반도체 설계 전문 기업 ARM 인수를 위한 컨소시엄을 꾸린다. 다른 기업과 합종연횡을 통해 독점우려를 불식시켜 전 세계 규제당국의 심사를 통과하겠다는 전략이다. 다만 컨소시엄을 구성하더라도 영국이 자국 반도체 산업 보호를 위해 승인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변수로 꼽힌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ARM 인수를 위해 컨소시엄을 구성하겠다는 계획이다.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은 지난달 정기 주주총회에서 "ARM 인수를 위해 다른 기업과 공동으로 투자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인수 전략은 독점에 민감해진 반도체 시장 상황 때문이다. 반도체가 개별 산업 분야가 아닌 경제·안보와 직결된 국가의 핵심 역량으로 여겨지며 전 세계가 반도체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지난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반도체 전쟁 선포나 중국의 반도체 굴기 선언이 그 예다.

최근 미국 엔비디아가 ARM 인수에 실패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엔비디아는 2020년 9월부터 ARM 인수를 약 50조원에 추진했지만 지난 2월 미국·유럽 등 규제당국이 모두 반대 의사를 표시해 포기했다. 엔비디아가 전세계 모바일 반도체 설계 시장에서 점유율 90%에 달하는 ARM의 영향력을 이용해 독점 행위를 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ARM은 반도체 설계 자산(IP)을 팹리스나 종합반도체기업(IDM) 등에 팔아 로열티를 받는 수익 구조를 갖고 있다.

이에 따라 SK하이닉스는 과거 일본 도시바메모리(현 키옥시아) 인수 때와 마찬가지로 여러 기업과 함께 컨소시엄을 꾸려 인수전에 뛰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SK하이닉스는 2017년 미국 베인캐피탈, 투자 펀드 KRR, 일본 국책은행 등과 한·미·일 컨소시엄을 꾸려 도시바메모리 인수에 성공했다. 당시 도시바메모리의 전 세계 낸드플래시 시장 점유율이 2위였다는 점에서 한·미·일 컨소시엄 역시 현재와 마찬가지로 반독점 심사를 위한 전략이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현재 컨소시엄에 참여할 것으로 예상되는 기업으로는 인텔, 퀄컴, 삼성전자 등이 거론된다.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2월 '2022 인베스터 데이'에서 ARM 인수를 위한 컨소시엄이 구성되면 참여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혔다. 특히 인텔과 SK하이닉스는 낸드 사업부 인수 과정에서 신뢰 관계를 맺었다는 점에서 업계에서는 인텔의 참여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또한 크리스티아누 아몬 퀄컴 CEO 역시 지난해 ARM에 대한 투자 의사를 밝힌 적이 있어 컨소시엄 후보로 언급되는 상태다.

삼성전자의 경우 2017년 전장 회사 하만 인수 이후 대형 인수합병(M&A)이 없었다는 점에서 꾸준히 ARM 인수 후보자로 거론돼왔다. 특히 한종희 부회장이 지난해 "3년 내 유의미한 규모의 M&A를 추진할 것"이라는 계획을 밝히면서 ARM 인수 가능성이 주목되고 있다. 시스템 반도체 시장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설계 기반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ARM 인수에 나설 수 있다는 분석이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기업에 ARM은 매력적인 매물이지만 인수가 쉽지는 않을 것"이라며 "다국적 기업으로 컨소시엄을 구성해도 영국이 자국 반도체 산업 보호를 이유로 허가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