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철근 빼먹기의 '희생양' LH
화풀이 자제해야, 근본적 원인은 건설업 퇴조
이 기사는 2023년 09월 11일 08시 28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딜사이트 이상균 IB부장] 1970년대까지만 해도 건설사의 해외 수주가 국내 수출액의 30%를 차지했다. 대형 건설사라고 하면 폼 나게 해외 나가서 토목공사나 플랜트공사를 수주하는 게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기다. 지금처럼 주택사업을 추진하는 건설사를 한 수 아래로 보던 시각이 팽배할 정도였다.


특히나 남성들에게 건설업이 얼마나 로망의 대상이었는지는 백종원의 사례만 봐도 알 수 있다. 요식업에 재능을 보인 그였지만 건설업에 대한 동경 끝에 건설사업을 시작했고 결국 끝이 좋지 못했다. 그도 인정했듯이 1990~2000년대까지만 해도 건설업에 비해 요식업을 낮춰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이후 건설업은 점차 사양산업의 길을 걸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경제가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국내 토목, 건축공사 발주가 눈에 띄게 줄어든 점을 주요인으로 들 수 있다. 여기에 인건비가 상승하면서 과거처럼 해외에서 저가 수주가 불가능해졌지만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설계 등 기술개발 능력을 게을리 한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무엇보다 이 같은 건설업 퇴조의 영향 중 가장 뼈아픈 부분 중 하나는 젊은 층이 건설업을 기피한다는 점이다. 건설업을 일명 '노가다' 산업으로 인식하다보니 젋고 능력있는 인재들은 건설업에 지원하는 것조차 기피하고 있다. 


건설사 내에서도 양질의 인재가 지속적으로 여타 산업으로 유출되다보니 현장소장을 맡길만한 인재 풀이 없다고 난리다. 오죽하면 보통 3개 현장을 두루 경험한 인물을 현장소장에 앉히는 게 일반적인데 최근에는 이를 충족하는 인물이 없어 고작 1개 현장만 경험하고 현장소장을 맡긴다고 한다. 건설업계에서는 현장소장의 역량에 따라 부실공사 여부가 천차만별로 달라진다고 할 정도로 현장소장을 중요시 여긴다. 최근 부실공사의 급증을 경험 많은 현장소장의 부족으로 해석하는 것도 큰 무리가 없어 보인다. 


젊은 층뿐만 아니라 기업 오너들조차 요즘에는 건설업을 기피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탓이다. 경북의 어느 건설사 오너는 기자에게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 언제든지 감옥에 갈 수 있다는 두려움에 시달린다"며 "건설업을 지속해야 하는지 회의가 들 정도"라고 토로했다.


최근 철근 빼먹기라는 이슈가 터지면서 온 나라가 난리다. 수억을 들여 마련한 내 집, 아파트조차 철근 빼먹기에서 안전하다고 100% 장담할 수 없다는 점에서 분노를 나타내고 있다. 누구 할 것 없이 건설사를 욕하고 공사 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며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손가락질 한다. 정부조차 LH의 자정 능력이 의심스럽다며 국토교통부 장관이 직접 나서 LH를 때리는데 여념이 없다. LH의 조직 축소 및 개편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번만큼은 그 강도가 남다르다는 점에서 예사롭지가 않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철근 빼먹기의 원인을 과연 LH의 탓으로만 덮어씌울 수 있을까. 정말로 LH 출신 협력업체에게 일감을 몰아주는 전관예우를 근절시킨다면 철근 빼돌리기 같은 건설업계의 구태가 완전히 사라질까. LH 내부 직원들의 땅 투기를 막을 수 있다면 부동산 시장의 거품도 제거할 수 있는 걸까.


마음을 가라앉히고 냉정하게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엄밀히 말해 철근 빼돌리기라는 국민의 공분을 사는 사건이 벌어진 이후, 우리가 LH라는 희생양을 만들어 화풀이한 것은 아닌지 말이다. 앞서 말한 대로 LH의 전관예우를 근절하고 내부직원 단속을 철저히 한다고 해서 건설업계의 구태가 사라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문제의 원인은 건설업의 퇴조에 있다.


경남 진주시에 위치한 LH 본사 사옥. (제공=한국토지주택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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